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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IT

[LG Gram] 그램gram 예찬

by 한량소년 2020. 4. 14.

그램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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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IBM Thinkpad를 사서 8년을 쓰다, 2013년부터는 맥북 프로 15인치를 써왔다. 맥에 입문한지 어느덧 7년, 업무할 때를 제외하면 PC보다 맥이 훨씬 편하다. 특히 아이폰-아이패드-맥북 테크트리 순으로 완전히 애플 생태계에 적응하고 보니 윈도우 시스템은 불편한 게 한 둘이 아니다. 그래서 업무용 PC는 오직 업무할 때만 쓰고, 기능을 제대로 배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옆에 맥을 두고 필요한 작업은 그것으로 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서서히 윈도우 바보가 되었다(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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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Coronal Invasion' 이후 나 역시도 변화해야만 했다. 팔자에도 없던 재택근무가 장기화 돼 매일 매일 evpn(재택용 neis 접속 프로그램)과 업무용 메신저에 접속해야 했다. 맥에서는 불가능한 업무환경이다. (난 부트캠프, 패러럴즈 따위는 일종의 '배교행위'로 본다).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윈도우PC나 노트북을 잠깐 빌려 쓰는 임시방편으로는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 더욱이 온라인개학이 발표되면서 윈도우PC 관점에서 연수자료도 작성해야 했다. 결국 윈도우 컴퓨터가 하나 필요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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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으로부터 빌린 2014년 Acer 모 모델은 무려 256 SSD를 품고 있었고 어찌어찌 구동은 됐으나, 필요한 작업을 준비하는 데 평균 30분 정도는 대기할 각오를 해야 했다. 결국 하나 지르기로 한다. 일단 에누리에서 시장분석을 시작했다. PC는 당연히 고려대상이 아니고 당연히 노트북만 본다. 삼성, HP는 내 감성이 아니니 스킵한다. 이미 '답정놑'이었지만, 역시 gram으로 시선이 간다. 내가 원하는 사양은 최소 i5, 256SSD, 8gb램 정도. 사용편의를 위해 윈도우10 내장형만. 예상대로 2020년 신모델 대충 150-160선이다. 굳이 신제품을 살 필요가 없음을 재확인하고 창을 닫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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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나라로 시선을 돌린다. 2018년 모델과 2019년 모델 중 잘 고르면 100만원 내외로 구입할 수 있겠단 판단이 섰다. 큰 가격차가 아니라면 되도록 2019년 모델 중 하반기에 출시ㄷ한 모델을 찾아본다. 써칭 10여분 만에 눈에 들어오는 녀석이 있다. 소유주께서 10월 이후로 짱박아뒀다는 2019년 8월 생산 모델이다. 판매지는 노원구 방학동(학원에서 확진자가 나온 곳)이고 105마넌이다. 네고를 시도해 볼까 하고 문자를 보내보지만 당연히 거절. 하루 만에 수많은 문자를 받으셨다는데 다들 나처럼 100마넌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105마넌도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이다. 당시 신품은 150아래로 사기 어려웠을 것이다. 퇴근 후 바로 가기로 약속을 잡는다. 약 1시간 반은 걸릴 것 같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자와 시간으로 돈을 사는 자.' 쓸 데 없는 생각을 잠시 하고 예정대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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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 본네트 위에 올려두고 물건을 검수한다. 박스가 없다는 게 살짝 아쉽긴 했지만, 그게 큰 흠은 아니다. 일단 외관은 사진과 그대로다. 출시 때 붙어 있던 보호필름을 아직 떼지 않은 것만 봐도 사용자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재부팅해 보고 디스플레이와 키보드 등 물리장치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각종 연결장치도 꼼꼼히 점검한다. 이상 없다. 아직 포맷 전이었는데, 윈도우 마지막 업데이트 기록이 10월인 걸로 보아 판매자 말(10월 이후 짱박)에 거짓은 없는 듯하다. 멀리서 왔다고 무선마우스도 덤으로 주신다니 감사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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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1킬로가 안 되는 무게가 정말 쥑인다. 한 손으로 들어도 아이패드 하나 든 느낌이다. LG디스플레이 특유의 째~앵한 화면도 역시 맘에 든다. 레티나디스플레이(2880*1800)에 익숙한 고급눈(?)이라 1920*1080이 다소 아쉽긴 하다. 부드럽고 쫀득한 키보드 키감이 아주 맘에 든다. 난 찰찰거리는 키감을 별로 안 좋아하고, 보통의 데스크탑 키보드처럼 깊게 눌리는 것보다는 노트북의 얕은 왕복을 선호한다. 그램의 키보드는 손가락에 힘이 많이 들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으니 내게 딱 맞는 스타일이다. 바디칼라에 맞춘 화이트 키보드의 미학 역시 손끝 갬성과 잘 어울린다. 애플이 2016년부터 없애버린 각종 포트들(usb, hdmi등)이 아직 살아있으니 그것도 참 다행이다(이건 딴 브랜드도 마찬가지이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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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10이 괜찮은 OS란 생각을 처음 했다. 이건 그램이 잘나서라기보다 그간 내가 썼던 업무용PC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업무용PC로는 그지 같은 모니터와 키보드 때문에 OS의 장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윈도우10은 맥OS처럼 굳이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고, 제한적이지만 앱스토어를 이용할 수 있다. 각종 인터페이스도 이전 세대보다 깔끔하고 눈에 잘 들어온다. 전반적인 편의성이 매우 좋아졌다. 내장그래픽이 어느 정도까지 지원해주는지 모르겠으나 디스플레이 화질만 향상된다면 맥북에 버금가는 시각적 만족감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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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기반 프로그램들도 매우 좋아졌다. 특히 파워포인트를 쓰며 깜짝 놀랐다. 키노트(맥 전용)를 너무 오래 메인으로 사용했으니 그새 파워포인트가 이렇게 좋아졌는지 몰랐다. 파워포인트가 키노트보다 한 수 위라는 데 이견이 없지만, 그동안 편의성 만큼은 키노트가 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파워포인트가 모든 면에서 더 멀찌감치 도망간 것 같다. 한순간 내가 '디지털원시인(원주민 아님)'이 된 기분이다. 앞으로든 보다 적극적으로 파워포인트를 사용해야겠다. 그외에도 화면캡쳐라든지 화면녹화, 기타 편의 기능들도 제법 향상됐다. 윈도우10을 잘 쓰는 사람은 크게 불만이 없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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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OS에 비해 못한 점도 있긴 하다. 무슨 설정을 바꾸려면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들어가는 목적지와 경로가 일원화돼 있지 않고 중구난방이란 생각이 자꾸 든다. 한두어 번 들어가 보면 웬만해선 다시 착기 쉬워야 하는데, 제어판 들어가는 법도 복잡하고 아무튼 잘 모르겠다. 고전적인 아이콘 스타일과 모던한 아이콘이 섞여 있어 헷갈리기도 한다. MS는 실용적인 것과 예쁜 것 중 어떤 디자인언어를 채택할지 아직도 고민 중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과 편의성 부분은 앞으로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맥처럼 이미 뽑아낼대로 뽑아낸 것 같은 녀석에게는 더이상 기대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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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gram은 예쁘고 쓸 만하다. 테이블 위에서 저 정도 실루엣을 뽐낼 수 있는 건 맥북과 이 녀석 뿐이다. 2년 뒤 75만원에 팔 생각이다.  끝.

 

현시각(4/14.14:30) 같은 사양 그램의 최상단 계시물. 75만원에 판매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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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