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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스포츠

도하의 기적 season2. [한국:포르투갈] 리뷰.

by 한량소년 2022. 12. 3.

"손흥민 왜 안 빼냐고. 아우 승질나 죽겠네!"

후반 45분까지 난 이 말을 한 열 번쯤 한 것 같다. 손흥민은 시종일관 무기력하고 비효율적인 플레이로 나를 환장하게 했을 뿐 아니라, 수차례 코너킥 때도 날카로운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의 전매특허 치달이나 감차는 커녕, 몇 차례 주요한 공격상황에서 무리한 1대1 돌파를 시도하거나 지나치게 완벽한 상황을 만들려 하다 패스타이밍을 놓치거나 슈팅도 못 하고 찬스를 무산시키곤 했다. 오늘 왼쪽 측면에서 활약이 좋았던 달롯을 적극 커버해주지 않으니 풀백 김진수의 부담도 점점 더 커져갔다.

손흥민이 이번 대회에서 느끼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지난 시즌 PL 득점왕에다가 이젠 명실상부 월클로 대접받는 선수가 대표팀에만 오면 기대에 못 미친 활약으로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 일쑤이니 이번 대회 만큼은 정말 잘하고 싶었을 게다. 마침 대회 직전 입은 안면골절의 영향도 있으니 얼마나 불안했겠나. 가뜩이나 떨어진 폼에다 안면마스크까지 꼈으니 신경이 꽤나 쓰였을 것이고.

그런데 벤투 감독님은 왜 손흥민을 안 빼고 이강인을 빼냐구유.ㅡㅡ; 설마 감독님도 손흥민은 함부로 못 건드리는 건가. 후반 막판에 수비들 서너 명 뻔히 뭉쳐있던 중앙으로 어이없게 몰고 들어가서 뺏기는 장면에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밖에 앖었다. 아 진정하자 진정해. 그래 저러다 또 한 건 할 수도 있긴 하지. 참자. 부디 꼭 한 건 해라. 에잇! 앗! 그런데.. 손흥민 어어어어~ 아 저기 음메페 뛰어들어가는데. 어 거기를 보네. 찔러주고. 어어어~ 황희찬!! 와와와와~~ 결국 손흥미이 한 건 하긴 했다.ㅋㅋㅋ 정말 미안하다 손흥민. 내가 잠깐 의심했다.ㅋㅋ

오늘 대표팀은 정말 잘했다. 정확히는 세 경기 모두 잘했다. 특히 중원에서 볼만 돌려도 불안하고 답답했던 과거 한국축구의 모습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했다는 것이 너무 놀랍고 감동적이다. 빌드업을 왜 이렇게 잘해. 오 저기서 저런 짧은 패스가 되네? 오호? 벤투식 빌드업축구를 가능케 한 수훈선수는 물론 황인범, 정우영, 김승규다. 그에 이재성, 김문환 등이 더해져 너무나 안정적인 볼키핑이 가능해졌다. 오~ 황인범 미쳤다 진짜. 김문환 뭐냐 왜 이렇게 잘해~ㅎㅎㅎ 정우영 킥 지렸다. 이런 말들이 경기 내내 내 입에서 튀어나올 정도로 잘한다.

골키퍼 김승규에 대해선 따로 한 문단응 더 써야겠다. 김승규 발밑에 공이 들어가면 전혀 불안하지가 않다. 상대 공격수가 전방압박을 나와도 웬만해선 당황하지 않고 후방빌드업을 시작하고, 정확하고 강력한 킥으로 공간에 있는 선수에게 정확히 볼을 배달한다. 지난 두 경기에선 별로 기회가 없었지만, 오늘은 몇 차례 결정적 선방도 보여줬다. 우리가 이런 골키퍼를 가진 적이 있었던가. 김승규는 우리나라 최초로 유럽에 진출하는 골키퍼가 될 것이다.

이강인 활용은 다소 아쉽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선발출전은 충분히 예상가능하긴 했는데, 난 그러다 별다른 활약 없이 교체돼 나가는 상황을 우려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반전엔 공격보다 수비에 치우친 움직임으로 체력만 소진하고 날카로운 공격본능은 제대로 보일 기회가 없었다. 심지어 심판의 부당한 판정으로 옐로카드를 빋은 이후 눈에 띄게 위축된 플레이를 보였다. 심판 ㅆㅂ놈. 심판때메 경기 망칠 뻔했다.

벤투감독은 아직까진 이강인 활용법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 것 같다. 지난 경기 동안 이강인은 조커로서 더 위협적인 선수였는데, 후반 중반 투입돼 적극적인 공격 롤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후반전에 빠르게 교체아웃하기보다는 더 위로 올리고 부진했던 손흥민을 아웃시키는 게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강인 이웃은 세트피스에서의 강력한 무기 하나도 함께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이강인은 황희찬과 교체돼 나갔고, 다행이 황희찬은 역전골을 넣었다(상의탈의 셀레브레이션 멋졌어ㅋ)

황희찬은 애초에 손흥민 대신 나왔어도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어쩌면 우리는 초반부터 경기를 쉽게 풀어나갔을지도 모른다. 부상 중이라 그동안 아껴뒀던 카드이기 때문에 투입타이밍에 관해 고민이 많았을텐데, 결과적으로 황희찬의 투입은 오늘 최고의 결정이었다. 이 시점에서 괜히 또 드는 생각. 가나전에도 잠깐 나와서 양사이드를 사정없이 흔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ㅎㅎ 아 이 놈의 결과론.

그런데 벤투감독님 요즘 완전 명장포스 오르셨는데, 오늘 옆자리에 코치 한 명 시켜서 몰래 무전 지시하는 거 너무 티난 거 아니에요? 그 덕에 교체타이밍도 지렸다는 거 인정합니다. 믿음의 야구, 아니 믿음의 축구로 손흥민 끝까지 끌고 가신 거 찬양합니다. 김영권 쓰러졌을 때 정우영을 센터백으로 내리고 정우영 자리에 손준호 투입하신 결단 대단하십니다. 마지막에 교체카드 한 장 남겨뒀다가 조유민 투입해서 골문 걸어잠그신 건 다 계획 속에 있던 거죠? 결국 역전할 줄 알고?ㅎㅎㅎ

근데 손흥민과 이강인 활용법은 앞으로도 고민이 필요해 보여요. 손흥민은 좀더 조직 안에서 역할을 했으면 하고, 되도록 사이드에서 돌파와 크로스, 감차 성공률을 높여야 합니다. 이강인은 수비부담이 큰 롤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요. 오늘 경기가 딱 증거물. 앞선 두 경기처럼 양날개 어딘가 또는 공격형미들로 보내는 게 좋겠어요. 조커로 쓰기엔 너무 아까우니 풀타임 동안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자구요.

아까 김승규 유럽간다 그랬죠? 돗자리 까는 김에 더 던져보면, 황인범도 곧 빅클럽 갈 거구요. 김문환은 유럽 갑니다. 두고 보세요.

아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날두형 고마워요.

출처: 동아일보

2022.12.03.토.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