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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물리&과학

문이과 통합에 대한 소견. 개인적 경험을 중심으로.

by 한량소년 2014. 6. 28.

(이 글은 약 두달 전 해당 주제로 한 논의에 앞서 간단히 적어 제출했던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고등학교 문이과 통합을 주요한 골자로 하는 [(가칭)2015년 교육과정]이 기본 설계에 들어갔습니다. 요즘 공청회와 세미나 등이 한창인데요.  일단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긴급'하게 추진하는 교육과정 개정에 대해서는 저 역시도 반대의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단지 과학교육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문이과 통합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간략하게 적어보고자 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문이과 통합의 기본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이는 주로 저의 개인적 경험에 근거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문이과 선택 시 많은 고민 끝에 이과를 선택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정치학, 경제학 등 문과계통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해당 전공분야로의 진학을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순전히 실물정치, 실물경제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일 뿐, ‘암기과목’으로 통하고 따분하기 그지 없는 사회과 계통 과목에 대한 흥미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특히 외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 높은 성취도를 달성하고 있었던 저로서는 이과를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문과보다 이과를 선택함으로써 보다 높은 점수를 취득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정도였고, 당시 허용되던 교차지원을 활용하여 정경계열로의 진학을 꿈꾸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고, 원하는 학과로의 진학에도 걸림돌로 작용하였습니다. 결국 이과 출신으로서 불이익을 감수하며 교육대학교를 진학하기에 이릅니다.


저는 대학과 사회에서 주로 인문사회 계열의 공부를 많이 하였는데, 이것은 정규교육과정 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읽기와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한 비중이 큽니다. 즉 일부 고급지식을 제외한다면 인문사회 지식의 많은 부분은 비형식교육을 통해 충분히 습득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에 반해 같은 기간동안 이과 계열의 학습은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해당 유형의 지식이 간단한 읽기와 경험으로는 습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수학과 과학 지식은 엄밀한 계층적성격때문에 앞서 바탕이 마련되지 않으면 도저히 후속지식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제가 고등학교 시절 이과에서 공부한 경험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보다 고차원적인 과학지식을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되었을 뿐 아니라, 과학적이고 논리적 사고는 세상을 읽는 힘을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어쩌면 쌩뚱맞을 수 있는 물리교육을 대학원 전공으로 선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경험을 통해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통합교육을 펼쳤을 때 다음 두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며 문이과를 선택하는 것은 일부 관심영역이 확고한 학생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학생들에게 충분한 고민 없이 너무 일찍 진로를 결정해버리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지나친 입시경쟁 문화 속에서 이른 시점에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교육환경에서 이는 너무도 가혹한 처사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보다 다양한 교과를 경험하면서 대학이나 사회에서 보다 전문적으로 다루고 싶은 영역을 탐색하는 시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공계 진학생들의 학력저하를 우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학교육의 강화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일부 선택교과제를 강화하여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둘째로, 문과나 이과 양쪽이 고르게 발달한 사람을 기르고, 대학에서 문이과 학문 간의 소통을 원할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과계열로 진학한 사람들이 거의 평생을 수학이나 과학과는 담을 쌓고 사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사실 이는 그들의 개인적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고등학교 시절 기본적인 이과 과목을 수강하지 않은 데서 기인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그들은 간단한 수학 공리나 물리법칙 등에 대해서도 지나칠 정도의 몰이해를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이 이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결과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문과 출신의 결정권자가 비합리적인 결정을 저지르는 폐단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심각합니다. 일부 과학자나 기술자들은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기도 합니다. 오늘날처럼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이 막대한 시대에 해당영역에 정통한 사람들이 인문사회적 소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재앙이나 다름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이과 통합교육을 통해 문과 학생들에게 보다 깊이있는 과학교육을 시행하고, 아울러 이과학생들에게도 인문사회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그 과정에서 과학교육이 상대적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인문사회교육의 비형식적 성취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인문사회교육은 자치활동, 동아리활동 등 사회성함양을 위한 활동을 통해 일부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융합형 인재’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우선 융합이라는 용어의 정의가 때에 따라 다르고, 융합적 인재라는 말 또한 그 지칭하는 대상이 명확해보이지는 않습니다. 단지 스티브잡스 등의 인물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융합형 인재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융합형 인재라는 거창한 구호를 표명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에게 보다 다양한 학문의 맛을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성장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문이과 통합은 의미있는 출발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두에서 밝혔듯 지금처럼 졸속으로 추진되는 것이라면 교육자의 입장에서 단언코 반대함을 밝히고자 합니다. 아울러 문이과 통합을 통해 과학교육의 후퇴가 발생해서도 안되겠습니다.


▼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joone/356445416/



2014.06.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