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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물리&과학

물리교육(과학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by 한량소년 2014. 9. 14.

(이 글은 대학원 강의에서 짤막하게 작성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과학철학자 Karl Popper (출처: http://www.yourbest100.com/people/top-100-philosophers)



물리학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이란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과 그것의 운동, 힘, 에너지 등에 대해 연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우주가 어떻게 존재하고 작동하는지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류의 지성이 싹트기 시작한 때(주로 서양에서는 그리스 시대를 일컫는)부터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철학의 일부로서 존재하였다. 물리학은 물질과 운동, 힘 등을 설명하기 위한 법칙이나 원리를 이론으로서 정립하고자 하는 이론과학의 성격을 가지며, 일반적으로 다른 과학 분야인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의 기초로 인식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물리학은 가장 성공적인 학문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인간의 활동은 많은 경우 목표지향적인 활동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중 물리학은 그러한 활동의 전형이다.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경험적인 관찰을 근거로 하여 논리적 체계를 구축하는 ‘과학적 탐구방법’은 다른 학문들과 과학을 명확히 구분해준다(물론 최근 다른 학문에서도 과학적 탐구방법을 활용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는 물리학을 기반으로 다른 학문들을 통합하고자 하는 통일학문의 꿈이 무르익고 있지만, 다양한 학문들이 고유한 학문적 특성을 정립하며 발전해온 배경과 역사를 무시한 과격한 시도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왜 물리학을 가르쳐야 하는가?

  인간은 자연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누구나 인간과 자연에 대한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중 자연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대답을 해줄 수 있는 학문은 바로 물리학이다. 또한 물리학은 대부분의 과학과 공학을 비롯한 많은 학문의 기초가 되며, 학문 자체가 갖는 논리적 체계는 다른 학문의 그것과 비교하여 대체로 경험적으로 실증적이다. 이러한 점은 과학적 탐구방법을 통해 구축된 물리학의 이론체계가 갖는 고유한 특성이다. 학생들은 물리학을 배움으로써 자연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물리법칙이 가진 '정합성’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물리학 고유의 과학적 탐구방법을 통해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갖출 수 있으며, 과학적 탐구방법에 대한 이해는 다른 학문을 잘 이해하는 데에도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 


물리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흔히 물리학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어려운 학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학교 현장에서 물리학은 수학과 더불어 기피 1호 과목이다(그러나 수학의 경우는 물리학과 달리 입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기본교과’이므로 물리학처럼 천대받지 않는다는 것이 차이라 하겠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물리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의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이렇게 어렵고 재미없는(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많은 경우 그렇게 간주되는) 물리학을 모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가? 물리학을 특히 어렵게 만드는 수학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은 어떤가?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물리학의 범위를 현재보다 축소하는 것은 어떤가? 보다 흥미로운 요소들을 교육과정에 도입하면 좋지 않을까? 등 많은 쟁점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테지만, 현재의 형태로 교육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점점 더 학생들로부터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물리학은 모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내용 조직의 수준은 철저하게 '보통 학생’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 물리학을 포함한 과학교과는 대부분의 학생이 체육 다음으로 손꼽는 인기 과목이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이르면 물리교과는 수학과 함께 가장 어렵고 지루한 과목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 이유는 물리교과가 그 모학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 이른바 논리적 이론체계와 과학적 탐구방법을 드러내기 보다는, 복잡한 수식의 단순한 나열(다소 과격한 표현임)과 지나치게 높은 난이도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물리학이 발전해오면서 갖추게 된 이론체계와 그것이 가능하게 해준 과학적 탐구방법을 모든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 교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리학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의 태동 배경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이다. 최소한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물리학의 범주는 우리들의 경험권 안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과학자들이 해당 이론체계를 만들어 내는 데 있어 지적 호기심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 학생들에게도 해당 영역을 가르칠 때 과학자들이 가졌을 호기심과 동기를 불러일으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유추를 가능케 한다. 물론 내가 물리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학생들이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물리학의 복잡한 이론을 감각적(특히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므로 이를 잘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리학은 수학과 달리 공리적으로 완결된 학문이 아니다. 물론 그 이론체계는 부분적으로 정합적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하나의 자연현상을 기술하기 위한 물리학 이론이 꼭 하나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두개 이상의 이론이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특정 이론이 지지를 받기도 하고 어떤 이론은 탈락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과학에 있어서는 자연스런 발전 과정이며,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이를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학생들이 다분히 갖고 있는 '물리학은 절대적 진리’라는 잘못된 환상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에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적극적으로 과학교육과정에 반영하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에게 물리학을 가르치는 것이 나 자신에게 왜 중요한가?

  나는 본래 초등교사로서 과학교과 뿐 아니라 다양한 교과를 가르칠 책임을 가졌었다. 그래서 여러 교과의 특성을 서로 견주어 파악하기에 중등교사보다는 다소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일단 밝힌다. 
  과학교과는 다른 교과와 달리 학생들이 갖는 호기심의 범위가 교육과정의 범주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은 한 6학년 학생이 특수상대성이론에 대해 질문을 해오는 바람에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은 이미 관련 서적 몇권을 읽고 난 후 이해가 어려운 부분에 대해 도움을 얻고자 나를 찾은 것이었고, 마침 나는 당시 개인적으로 관련 내용을 공부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그 학생과 함께 관련내용에 대해 논의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논의는 이후 며칠 간 더 계속되었다. 이렇게 특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초등학교 과학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내용을 정확히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로 하여금 교사용 지도서 수준 이상의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과학교과는 교사들에게는 대표적인 기피교과이다. 
  대부분의 초등학생은 앞서 기술했듯이 과학교과를 대체로 좋아한다.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 과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편견을 갖게 될 경우 이는 자칫 이후 학교급에서 과학을 기피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대로 초등학교에서 과학을 잘 배우면 학생들은 과학을 보다 사랑하고 즐길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자연에 대한 바른 이해는 그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케 해준다. 이는 언뜻 사변적인듯 하지만, 자연의 일부로서 결국 자연을 벗어나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인간의 바른 삶에 대해 고찰해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물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는 곧 자연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인 것이다. 그래서 학생에게 물리학을 잘 가르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하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구별되는 과학(물리)교사로서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과학교사는 우선 교사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과학교사의 전문성을 이야기하려면 결국 교사의 전문성을 먼저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교사의 전문성은 흔히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전문성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전문성을 이야기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과학교사란 과학 자체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할 것이고, 이를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매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과학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기술이었다. 
  나는 여기에 몇가지를 보태보고자 한다. 바로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성과 학생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 마지막으로 교사 스스로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습관이다. 
  먼저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성이란 과학교육과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 전반을 아우르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교육과정이란 결국 초중고 교육과정 안에서 구성되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교사라 할지라도 과학교육과정이 토대를 두고 있는 일반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아울러 과학교육과정만 떼어 보더라도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는 과학 내용 자체에 대한 이해와 구별되어야 한다. 특히 교육과정에 들어갈 내용을 선정하고 조직하는 능력은 교사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이다. 이러한 능력은 교사를 내용학 전문가와 구별해주는 주요 기준이기도 하다.
  둘째로 학생과의 소통능력은 최근 들어 특히 중요하게 요구되는 자질이기도 하지만, 본래 교사는 늘 학생과 함께 해야 하는 사람이므로 어쩌면 다른 어떤 자질보다 중요한 자질일 수 있다. 특히 많은 교육심리학 연구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학생의 도덕성, 사회성 등 정의적 영역 뿐 아니라, 인지적 영역의 발달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고 있다. 과학교사는 단지 과학만 잘 가르치면 된다는 발상은, 이처럼 교사와 학생의 올바른 관계가 정립된 뒤에야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늘 자기 자신의 교육활동을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교사의 모든 교육활동은 수많은 인간 활동 중에서 가장 복잡한 활동이다. 교사가 하루 종일 상대하는 대상은 인간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가장 이해하고 싶어지만 아직까지 가장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대상이야말로 바로 인간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교사의 활동은 늘 시행착오와 예외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교사는 늘 자신의 활동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학교육학(혹은 물리교육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인접 학문분야와 비교)

  과학교육학은 과학교육이라는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다. 나는 이를 경제학과 비교하여 설명해보고자 한다. 경제학은 경제라고 하는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다. 여기에는 경제라는 대상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들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것 뿐 아니라, 이를 통해 효과적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방법과 올바른 경제정책을 설계하는 일 등이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과학교육학이라면, 과학교육 현장에서 실제 일어나는 교육활동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이 기본이 될 것이다. 그리고 효과적으로 과학교육활동을 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올바른 과학교육의 방향을 정립하는 일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이 중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올바른 과학교육의 방향을 정립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경제학사조가 서로 경쟁하며 발전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각각의 학문사조들은 경제현상을 바라보는 고유의 관점을 가지고, 보다 올바른 경제활동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이 해야할 일들을 규범화하여 제시한다. 우리 과학교육 역시 과학교육의 발전을 위해 과학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목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그에 따라 기존의 과학, 교육학과는 차별화된 과학교육 고유의 학문적 성격과 연구풍토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일견에서는 과학교육학은 과학의 하위영역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발상이 있어왔는데, 이는 과학과 과학교육이 서로 다른 관심과 연구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경영학을 경제학의 하위영역으로 간주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우리나라 초중등학교 과학교육(특히, 물리교육)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초중고 교육과정을 구성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 중 하나는, 학생들이 대학 진학 후 대학강좌를 정상적으로 수강하는 데 필요한 학력수준을 초중고에서 길러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나는 초중고 교육은 기본적으로 그 고유의 목적과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것은 대학교육의 바탕을 마련해주는 차원과는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초중고 교육을 통해 본질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인간상을 정립한 후 그에 맞추어 과학을 가르치면 될 일이다.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대학 이공계 학과에서 성공적으로 수학할 수 있는 ‘예비대학생’을 길러내기 위한 입시학원식의 물리교육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것이 학교 현장에서 과학교육의 실패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2014.09.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