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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철학&문학&교육

한나 아렌트, [칸트의 정치철학강의] 요약(5~6강)

by 한량소년 2014. 11. 18.

(독일 출신의 한나 아렌트는 20세기 최고의 정치 사상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사상은 판단이론으로 수렴되는데, 매우 재밌게도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많은 부분 의지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 위키백과 : http://ko.wikipedia.org/wiki/한나_아렌트


▼ 출처: https://mirror.enha.kr/wiki/한나%20아렌트




한나 아렌트, [칸트의 정치철학강의]


제5~8




다섯 번째 강의


플라톤은 진리는 비물질적이며 감각지각을 초월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참된 인식은 감각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정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반면 칸트는 모든 인식은 감각과 오성의 상호작용과 협동에 의존한다. 따라서 육체와 감각이 오류와 악의 주요 근원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 입장에서 두 개의 중요한 결론이 나온다. 첫째, 칸트에 따르면 철학자는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경험을 명료화한다. 칸트에서 철학자는 동료 인간들 속에 살고 있을 뿐, 동료 철학자들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둘째, 칸트는 쾌와 불쾌를 중심으로 인생을 평가하는 과제는 인생을 전체적으로 반성해본 모든 양식 있는 일반인들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두 결론은 다시금 명백히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며, 이 동전의 이름은 평등(equality)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최고의 철학이라 하더라도 자연이 가장 평범한 오성에게 부여한 길잡이 능력이 인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앞서 나아갈 수는 없다.”라고 적기까지 했다.

(인식할 수 있는 것의 한계인) 인간의 인식범위를 초월하여 철학을 하는 것, 즉 이성의 사유작용은 칸트에게는 인간적 능력으로서의 이성의 필요를 말한다. 여기서 흥미 있는 사실이 등장하는데, 정치에 대한 철학자의 관심이 사라지는 것이다. 철학자는 정치에 대해 어떠한 특별한 관심도 갖지 않는다. 칸트는 플라톤에 반대하여 철학자가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철학자의 말을 기꺼이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위계질서의 철폐는 모든 위계질서 구조의 철폐를 의미하는데, 이와 더불어 정치와 철학 사이에 존재하던 오랜 긴장이 완전히 사라진다. 

칸트는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기쁨에 앞서 부족함을 기억하거나 나중에 그것을 상실하는 데 대한 두려움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전적으로 순수한 기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부족함이 클수록 불코개 클수록 쾌의 강도는 더욱 클 것이다. 이러한 규칙에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미를 직면했을 때 느끼는 쾌의 경우, 즉 “무관심적인 기쁨(disinterested delight)”이다. “무관심적 기쁨”은 정치철학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칸트는 자신의 저술에 왜 “비판”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비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된 것은 계몽의 시대를 의미해는 “비판의 시대”라는 말 때문이다. 계몽주의는 편견, 권위로부터의 해방, 즉 정결예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판의 결과는 독립적 사유(selbstdenken), 즉 “당신 자신의 정신의 사용”이다. “비판”은 “이성의 근원과 한계를 발견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비판이란 단어는 독단적 형이상학과 회의주의에 이중적으로 대립한다. 이 양자에 대한 대답은 비판적 사고이다. 이는 어느 한쪽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비판적 사고가 독단론과 회의주의의 중간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아니다. 비판적 사고는 사실상 이러한 선택을 물리쳐버리는 길이다. 비판적 입장은 이 두 관점에 반대하며 겸손하게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자신에게 부여된 인간의 기능과 같은 것을 탐구할 수는 있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으며 또 무엇을 알 수 없는지에 대해 분석해봅시다.” 이 것이 칸트의 책이 순수이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제목을 가지게 된 이유이다.




여섯 번째 강의


독단론과 회의주의 사이의 전투에 개입하는 비판가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진리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진리를 갖거나 소유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우리의 정신기능에 대해 먼저 분석해 봅시다.”라고 말할 것이다. 의심할 나위 없이 비판은 사변적 이성(speculative reason)을 제한하고 있으며, 실제로 부정적(negative) 성격을 갖는다.”

칸트 자신은 물론 자신의 업적이 갖고 있는 명백히 파괴적인 측면을 보지 못했으나, 그는 시대정신과 상당히 일치하여, “그러한 상실은 학파들의 독점상태에만 영향을 미칠 뿐 사람들의 관심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논점은 학파들의 오만한 생각들-자신들이 유일한 진리의 소유자라고 하는-에 대해 제기한 것이다. 즉 최고조에 달했던 계몽의 정신이 당시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칸트 이후 세대의 헤겔과 같은 독일 관념론의 태도를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헤겔은 “철학은 본질상 심원한 것으로 이는 대중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철학의 시작은 일상적인 의식이 부여하는 유의 진리를 넘어서서 자신을 고양시키는 것, 즉 보다 고차적인 진리의 전초여야 한다.”고 말할 정도이다. 진보를 중심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는 분명히 철학이 그 시초에 가졌던 모습으로 “퇴보”한 것이다.

제목에 비판이란 단어를 사용한 또 다른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다. 마르크스에게 비판은 이론을 실천과 연결시키는 것에 해당되는 말이다. 구시대의 이론적 해체에 뒤이어 그에 대한 파괴의 실천이 뒤따른 예는 바로 프랑스혁명이다. 그는 칸트의 거대한 기획을 계몽의 가장 위대한 산물로 여겼으며, 칸트와 더불어 계몽과 혁명은 서로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 편견 또는 검토되지 않은 의견이나 신념을 헤치고 사유의 나아갈 길을 열어가는 것은 철학의 오랜 관심사였다. 칸트는 “소트라테스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고 밝혔다. 소크라테스의 방식이란 대화 상대자들에게서 모든 근거 없는 신념들과 “무정란(windeggs)”을 비우는 일이었다. 검토(examination)의 과정에서는 어떠한 지식도 생겨나지 않는다. 그가 실제로 했던 일은 사유과정을 담론 속에서 공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사유를 지배하는 유일한 규칙, 후에 무모순성의 원리라고 불리는 규칙을 발견하였다. 소크라테스에게 윤리적인 동시에 논리적인 이 공리가 칸트에서 다시금 윤리학의 원리가 되었다. 이는 사유와 행위 양자를 규정하는 동일한 일반적 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유파의 일원도 아니었고, 어떤 학파도 만들지 않았다. 학파와 유파들은 설립자의 교리에 의존하기 때문에 계몽되지 않은 것이다.

비판적 사고방식은 항상 정치적 함의를 가졌다. 비판적 사고는 원칙적으로 반권위주의적이다. 칸트는 자신의 생각을 대중적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 거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칸트와 소크라테스에 딸면, 비판적 사고란 자신을 “자유롭고 공개된 검토”를 받게 하는 것이다. 계몽의 시대는 “이성의 공적 사용”의 시대이다. 따라서 칸트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유는 스피노자처럼 철학적 자유(libertas philosophandi)가 아니라 언론과 출판의 자유였다.

“자유”라는 말은 칸트에게 많은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자유는 “자신의 이성을 모든 면에서 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성의 공적 사용이란, 학자로서 한 개인이 이성을 독서대중 앞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학자는 “세계시민의 사회”의 구성원이며, 그가 대중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능력 가운데에서이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는, 타인들도 자기의 관점을 갖도록 설득하기 위하여 개인이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칸트는 사유기능 자체가 그의 공적 사용에 의존한다고 믿는다. 이 문제에 대해 칸트의 입장은 정치가가 아니라, 철학자 또는 사상가의 입장이다. 칸트는 사유란 내가 내 자신과 행하는 조용한 대화라는 점에서 플라톤에 동의한다. 그러나 철학적 타당성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은 <판단력 비판?에서 취미판단에 대하여 요구했던 것으로 “일반적 소통가능성(general communicability)”이다. 인간 자체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소통하고 말하는 것은 인류의 자연적 소명(natural vocation)이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강의


소통가능성은 말을 들을 수 있고, 경청할 수 있는 사람들(men)의 공동체를 명백히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에게서 자신의 생각을 공적으로 소통할 자유를 박탈하는 외부 권력에 대해 생각하는 자유 또한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비판적 사고를 위해 필수적인 이 공공성의 요소는 다른 괌점에서도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주장에 숨어 있고 내재되어 있는 함축들을 드러내는 일을 했다. 비판적 사고는 대체로 이러한 종류의 “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검토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말에 대해 그 이유를 설명할 의사가 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설명하기(Logon didonai)”라는 용어 자체는 그 기원에 있어 정치적이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생각하고 가르친 것에 대하여 대답할 준비를 하고 책임지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에서 철학으로 변형되었다. 비판적 사고의 가장 위대한 근대적 대표자는 칸트였다.

비판적 사고는 배워서 알게 된 자기 자신의 생각에 비판적 기준들을 적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적용은 공공성, 즉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만날 때 발생하는 검사작용이 없다면 학습될 수 없다

불편부당성(impartiality)이 타인들의 관점을 고려함으로써 획득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확장”함으로써 타인의 생각을 고려할 수 있다. “정신의 확장(enlargement of the mind)”은 <판단력 비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우리의 판단을 타인의 가상적 판단과 비교함으로써, 그리고 우리를 타인의 입장에 놓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 상상력이다. 비판적 사고는 다른 모든 관점들이 검토를 위해 개방되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비판적 사고는 고독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상상력의 힘에 의하여 타자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잠재적으로 공적이며 모든 입장에 공개된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비판적 사고의 기술은 엄청나게 확장된 감정이입(empathy)은 아니다. 사고한다는 것은 독립적으로 생각하기(Selbstdenken)를 의미하는데, 이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은 이성의 격률(maxim)이다. 그러한 수동성에 빠지는 것이 편견이다. “확장된 사고”란 수많은 이들이 제약을 받는 주관적이고 사적인 요소들을 배제함으로써 성취된다. 이는 우리가 보통 자기이해라고 부르는 것을 배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일반적 관점이란 단지 관찰자의 관점일 뿐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관념론자들이 손쉽게 말하는 “세계시민”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시민은 책임과 의무, 권리 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것은 지역적으로 제한된다. 칸트의 세계시민은 실제로는 세계관찰자(Weltbetrachter)이다. (프랑스혁명의 예) 관찰자의 사유양식은 그 일반성 덕분에 인류의 특성 전체를 동시에 증명하는 것이며, 그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 덕부에 인간성(humanity)의 도덕적 특성이 된다. 이 도덕적 특성은 적어도 그 성향에서 보다 나은 것을 향한 진보에 대한 희망을 사람들에게 허용한다.



열덟 번째 강의


(혁명에 대하여) 일어난 일(Begebenheit)의 중요성은 관조자의 눈에만, 즉 자신의 태도를 공적으로 선언하는 방관자의 의견 안에만 존재한다. 그 사건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인류의 “도덕적 특성”을 증명한다. 이런 공감적 참여가 없다면, 사건의 “의미”는 전적으로 달라지거나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공감을 톻해 모든 혁명이 지나가면 그의 모든 변혁적 효과와 더불어 자연의 최고의 목적, 즉 인류의 모든 원초적인 능력들이 발달하게 될 세계시민적 존재(cosmopolitan ecistence)가 마침내 실현된 것이라는 희망을 일으킨다.

칸트는 어떠한 통치자도 감히 공개적으로 문제삼을 수 없는 “국민의 권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천명한다. 이러한 권리들은 그것의 실현을 위해 사용되는 수단이 도덕성과 일치하는 조건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상태가 좋든 나쁘든 간에 반역은 결코 정당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행위할 때 따르는 원리와 판단할 때 따르는 원리 사이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할 경우에는 환호해 마지 않을 일이지만, 거기에 관여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모든 정치행위를 규율하고 있는 “공개성이라는 선헌적 원리” 때문이다. 칸트는 <영구 평화론>에서 참여하는 행위자와 판단하는 관찰자 사이의 충돌을 “정치와 도덕의 충돌”이라고 부르고 있다.

칸트는 “긍정적이고 선험적인 원리”를 제안한다. 자신의 목적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서 공공성을 필요로 하는 모든 준칙은 정치와 권리에 일치한다. 사적인 준칙은 내가 그것을 공적으로 선언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검사해보아야 한다. 여기서 도덕성이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일치이다. 준칙이 사적으로 남기를 고집하는 것은 악한 것이다. 도덕성이란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유로울 때에만 입법자-스스로 법칙을 수립하는-가 될 수 있다.그 전제조건은 명백히 “펜의 자유”, 즉 행동을 위한 공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의견을 위한 공적 공간이 실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역의 순간이란 의견의 자유가 폐지되는 순간이다.



<생각>


칸트의 업적 중 하나는 철학을 (일반) 인간들의 삶에 대한 것으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이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매우 의미있는 말이기는 한데, 칸트의 글은 평균인의 지적 수준으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아렌트는 칸트가 비판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이성의 근원과 한계를 발견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밝힌다. 사실 칸트를 공부하기 전까지는 칸트 역시 다른 관념론자들과 같이 형이상학적인 주장을 하는 철학자일 것으로 생각했었다. 나는 과학을 공부한 이후로 지나친 형이상학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칸트에 대해서도 그다지 흥미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물론 한번 넘어야 할 철학자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철학을 접한 후, 특히 그가 뉴턴의 과학적 성공을 토대로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전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칸트는 나에게 무척 흥미로운 철학자로 다가왔다. 1,2비판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지만, 3비판서를 잘 이해하기 위해 이전 두 비판서의 내용을 간단히 개괄하는 과정에서 그의 깊은 통찰에 연이어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을 통해 다시금 <순수이성비판>을 독파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칸트는 독단론자와 회의론자가 대화하는 가운데 비판적 사고를 강조한다. 철저히 소크라테스의 방식을 따른 칸트의 예에서, 독단과 회의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던 칸트를 본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유파와 학파에 속하지 않았고, 그래서 독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다른나라의 학계와의 비교에서 곧잘 언급되는 것이, 우리나라 학계는 비판 문화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을 비판하는 문화는 물론이거니와, 같은 학계 내 학자들 사이에서조차 서로 비판하는 문화도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또한 걸핏하면 권위있는 학자의 말과 글을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이 실종된 학자들의 모습도 자주 언급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다운 사람이 되자.”라고 다짐하곤 하는데, 물론 내 스스로 독단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선 주의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칸트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우리 나라 철학자들은 여전히 정치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어떤 철학자가 정치에 대해 발언을 했거나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바가 별로 없다. 프랑스만 보더라도 긴급한 국가적 사안에 대해 철학자들이 목소리를 드높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2014.11.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