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스포츠

누가 프랑스를 막을까? [아르헨:크로아] 리뷰

by 한량소년 2022. 12. 14.
<누가 프랑스를 막을까? [아르헨:크로아] 리뷰>
이번 월드컵은 누가 프랑스를 잡을지 경쟁하는 대회 같다. 프랑스는 그 어느팀보다 안정된 경기력을 보이는 중이고 딱히 헛점을 찾기 어렵다. 음바페와 지루의 결정력도 그렇고, 경기가 거듭될수록 축구도사가 되는 그리즈만도 엄청나다. 현재 전반적 공수밸런스에서 비교할 만한 팀이 없어 보인다.
1. 잉글랜드 아웃
난 본래 잉글랜드 팬은 아니지만 8강전에서 잉글랜드가 프랑스를 이겨주길 바랐다. 잉글랜드는 전반적으로 프랑스보다는 무게감이 살짝 덜하지만, 역대 최강이라 해도 손색없는 스쿼드를 갖췄기 때문에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벨링험과 포든, 사카 같은 번뜩이는 신성들의 활약이 눈에 띄고, 조규성의 상위호환 케인도 여전하다. 중원의 조합도 좋다.
이날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경기를 주도하며 승리에 다가서는 듯했다. 카일워커는 음바페를 꽁꽁 묶었고, 사카는 날라다녔다. 하지만 손꼽히는 PK장인 케인이 두 번째 PK를 놓치며 잉글랜드가 패하고 말았다. 역시 잉글랜드는 아무리 잘해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만 만나면 종이호랑이가 된다. 지금이 아니면 잉글랜드가 언제 프랑스에 비벼볼 수나 있을까.
2. 브라질 아웃
프랑스를 막을 만한 다른 팀은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어느 대회 때나 경기를 거듭할수록 강해졌다. 강팀들은 보통 토너먼트 때를 위해 컨디션 관리를 한다고 하는데, 브라질은 모든 선수를 경기에 투입했을 정도로 체력 관리도 잘했다. 네이마르를 중심으로 짜임새있는 공격진을 갖췄도, 모든 선수의 개인기가 뛰어나다. 후보선수로 팀을 꾸려도 웬만한 국대팀보다 낫다.
그런데 브라질은 결국 크로아티아 늪축구의 희생양이 되었다. 탄탄한 미드필드진과 투쟁적인 크로아티아 선수들 앞에서 마치 순한 양과 같은 모습으로 실속 없는 플레이 끝에 승부차기 패배를 당하고 만다. 늘 우승후보 일순위임에도 상대적 약팀에게 일격을 당하던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완전히 압도적인 멤버와 개인기로 경기를 지배하지 않는 이상 조직력과 피지컬로 들이미는 상대에겐 고전하는 경우가 많은 팀이 바로 브라질이다. 물론 이날은 상대 골키퍼 리바코비치의 선방도 한몫 하긴 했지만.
3. 크로아티아 아웃
모드리치, 코바치치, 브로조비치의 강력한 미드필드진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볼간수와 빠른 공수전개로 상대를 압박하는 크로아티아는 이번 대회 가장 매력적인 팀이다. 4년 전에도 토너먼트 전 경기를 연장전까지 치르고도 결승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한 팀이다. 물론 결승에서는 맥없이 프랑스에게 패배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드리치의 마지막 월드컵이기도 해 조별리그부터 크로아티아를 응원했다. 모로코와 더불어 언더독의 대표주자로서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지만, 결승에서 과연 프랑스를 누를 만한 전력인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오늘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에게 완전히 졌다. 제대로 된 유효슈팅도 몇 차례 없었다. 이전의 강력한 미드필드진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었다. 운이 따라주지 않아 초반 두 골을 너무 빨리 허용하고 말았는데, 무리한 공돌리기와 드리블에 의한 턴오버가 원인이었다. 브라질전에서 보여주던 발빠른 리커버리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크로아티아가 자랑하는 3미들도 상대와의 중원싸움에서 완패했는데, 미드필드에 4명을 배치한 아르헨을 상대로 감독의 전술실패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4. 아르헨 너밖에 없다.
이번 대회에서 아르헨티나 경기는 대부분 깊은 밤에 치러지는 바람에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게 패배한 경기만 풀타임으로 봤기 때문에 이 팀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는 원래 90년 이탈리아월드컵부터 아르헨티나(서독이 이어 준우승)를 응원해왔는데, 이번 대회 만큼은 별로 애정이 가지 않았었다. 메시를 중심으로 운용하는 전술 스타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 대회에서 크로아티아에게 0:3으로 패배하며 물러났던 기억도 이같은 생각을 강화했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달랐다. 과거 메시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메시만 바라보던 선수들이 아니었다. 메시가 중앙에서 프리롤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움직임이 조직적이고 각각의 역할분담이 잘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메시 역시도 과거와 달리 필요한 상황에서만 공을 끌고 공수 연결과 조율에 주력하는 편이었다. 맥칼리스테르와 데폴의 중원도 견고했고, 칼리아피포의 좌측도 위력적이었다.
맨시티에서 할란드의 백업으로 자존심을 구기고 있는(?) 알바레즈는 오늘 인생경기를 했다. 그동안 메시의 파트너들이 답답한 결정력으로 메시를 고개 숙이게 했다면, 알바레즈는 전례없는 라인브레이킹 실력으로 메시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줬다. 맨시티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가끔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알바레즈는 아게로를 능가하는 대목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특히 대표팀에만 오면 소속팀에서의 폼을 보여주지 못했던 메시에게 이번 만큼은 확실한 파트너가 생긴 듯하다.
오늘 크로아티아전을 보고 나니 스칼로니 감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에 비해 부족한 개인기를 파워와 스피드로 보완하는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해왔었는데, 이번 대회에는 자신들의 장기를 극대화하면서도 실리적인 축구로 많은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상대적 약팀으로 보이는 크로아티아에게 오히려 점유율을 내주고 상대 뒷공간을 노리는 전략으로 맞선 것. 또한 모드리치를 위시한 상대 중원을 상대로 더 많은 미들진을 배치해 상대의 미스를 유인하는 전략이 제대로 먹혔다.
또한 이 감독은 메시를 활용하는 방법도 제대로 알고 있다. 메시는 역시 역시 자유로워야 잘한다. 경호대장 데폴과 여타 미들진들이 메시를 철저히 엄호하게 하고, 메시의 수비부담을 덜어준다. 물론 이전에도 마스체라노 등이 그런 역할을 해줬지만, 당시엔 메시가 막히면 팀의 순환계 전체에 동맥경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흔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스피드와 파워가 뛰어난 신예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빠른 공수전환과 역습을 통해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전술이 잘 통하고 있다. 그러니 메시의 공격포인트도 동반상승 중이다.
하지만 메시의 위상과 영향력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여전한 불안요소다. 오늘 크로아티아가 전술적으로 불완전한 모습을 자주 보였고, 턴오버가 잦았다는 점이 아르헨티나에겐 기회였다. 프랑스처럼 뒷공간을 쉽게 내주지 않는 팀을 상대로도 아르헨티나가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다. 음바페를 지웠던 카일 워커 같은 선수가 아르헨티나에는 없고, 올리비에 지루는 크로아티아 페트코비치보다 결정력과 연계가 뛰어나다. 프랑스는 크로아티아보다 전체 스쿼드도 훨씬 앞선다. 과연 프랑스를 상대로도 아르헨티나가 잘할 수 있을까?
파울로디발라와 앙헬코리아가 3:0이나 돼서야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는 팀 아르헨티나. 니네가 프랑스를 꼭 이겨주기 바란다.
아 맞다. 모로코가 프랑스를 이길지도 모르지. 현재까지 자책골을 제외한 실점이 없는 유일한 팀 모로코. 니들이 먼저 이겨라.ㅋ
2022.12.14.수.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