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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스포츠

어디에서 태어났든. [월드컵 결승전] 리뷰 #1

by 한량소년 2022. 12. 28.

출처: 스포탈코리아

메시는 아르헨티나를 이끌고 결국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올림으로써 오랜 GOAT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월드컵 우승이 대체 뭐라고. 난 메시가 드디어 GOAT가 됐다는둥, 황제대관식을 했다는둥 하는 표현들이 영 불편하다. GOAT 기준에 월드컵 우승이 들어간다는 게 꽤나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가대항전 우승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풍습은 오직 축구에서만 살펴볼 수 있는데, 같은 팀스포츠인 농구나 야구에서는 리그과 소속팀에서의 활약만으로 선수의 커리어를 평가한다. 국가간 국력의 경쟁이라는 축구만이 '독특한 성격'을 고려한다 해도 선수 개인을 평가하는 데 그의 국적과 국가대표팀의 실적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영 못마땅하다.

물론 국적이 축구선수에게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현재 월드클래스 수준에 올랐다고 평가받는 손흥민이나 김민재는 한국이 아니라 잉글랜드나 아르헨티나에 태어났다면 훨씬 좋았을지 모른다. 그들에게 대한민국 여권은 특별히 유리한 조건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손쉽게 연령별 국가대표가 되었고, 월드컵 본선엔 꼬박꼬박 출전하는 팀의 주전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 여권은 나름 쓸모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국적은 축구선수에게 이득이 될 수도, 손해가 될 수도 있겠다.

어떤 선수의 커리어를 평가하는 데 소속팀(클럽팀 같은)의 성과를 고려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면 당연히 좋은 팀에서 다른 잘하는 선수들과 함께 좋은 성과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선수라면 그 과정에서 당연히 특별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소속팀의 성과를 빼놓고 선수의 커리어를 논하는 것은 어렵다. 트로피란 전쟁과 같은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기도 하므로, 트로피의 이름과 무게는 당연히 선수의 이름값을 드높여준다. 그래서 클리블랜드의 르브론이 온갖 욕을 먹으며 마이애미로 떠나 빅3를 결성한 것이다.

하지만 국적은 다르다. 국적은 소속팀 고르듯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시는 월드컵 단골 우승후보인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졌고, 음바페는 최근 폼이 가장 좋은 프랑스의 국가대표다. 잠재적 월드컵 우승팀의 멤버란 뜻. 반면 모드리치는 발칸반도의 작은나라 크로아티아를 이끌고 있고, 레반도프스키의 폴란드는 월드컵 예선 통과도 장담하기 어려운 팀이다. 메시는 이번에 제법 좋은 선수들과 감독을 만나 자신의 마법을 더해 결국 월드컵을 들어올렸다.

메시의 영원한 라이벌일 줄 알았다가, 이젠 과거의 라이벌이 되어버린 크리스티아노 호날도. 그는 한때 GOAT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결국 월드컵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호날도는 GOAT가 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는 스페인이 아니라 포르투갈의 국구대표이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이 그나마 2014년에 유로컵을 들어올린 것이 놀랍게 여겨진다. 그를 평가하는 데 그의 국적이 중요한 요소여야 할까? 손흥민이 한국인이라서 부당한 평가를 받아도 되는 걸까?

우연히 본 어떤 호날도 팬의 표현을 빌리자면, "브라질은 호나우도를 낳았고,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낳았다." "하지만 호날도는 포르투갈팀을 알렸다!" 어쩌면 이런 게 더 위대한 업적이 아닐지.

(난 호날도 별로 안 좋아함. 오해 금지.)

2022.12.28.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