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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물리&과학

문이과 통합에 대한 소견(2). 한 독자님(?)의 지적에 대한 답글.

by 한량소년 2014. 9. 28.

(이 글은 [문이과 통합에 대한 소견. 개인적 경험을 중심으로]이라는 제목으로 6월 28일에 적었던 글에 대하여 댓글을 적어주신 한 독자님(?)을 향한 나의 답글이다. 해당글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 http://halyang-drift.tistory.com/50


▲ 출처: http://www.visceralconcepts.com/connecting-dots-steve-jobs-2005-stanford-commencement-speech/



문이과 통합에 대한 소견(2), 한 독자님의 지적에 대한 답글.


우선 제 글의 요지는 문이과통합의 기본적 취지에 공감한다는 것이고, 저의 경험에 비추어 몇가지 장점을 제시한 것입니다. 문이과통합이 무조건 완벽할 수는 없기에 이에 비판적인 의견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일단 선생님의 의견에 대해선 아래와 같이 반박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문이과 구분은 왜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인간의 발달과정이라는 것이 과연 고등학교 때 문이과를 나누어 교육해야 할만큼 엄격하게 분화가 일어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사실 안타깝게도 이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결론에 이른 것 같지 않습니다. 다중지능이론이라든가 그에 대한 지지이론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반대되는 이론도 분명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만약 인간의 발달분화가 문이과를 구분해야 할만큼 엄밀하다 할지라도 고등학교 때 문이과를 구분하여야 한다는 정당성을 바로 뒷받침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위 글에서 밝혔듯,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 자신이 무엇이 재능이 있는지(발달분화가 일어났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평생 업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는 문제를 고등학교라는 이른 시기에 결정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일찍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운동부나 예술 계열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다는 이유로 교과수업을 듣지 않겠다고 하였을 때 우리는 쉽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문이과로 교육과정을 나눈 것은 대학교육과의 연계를 고려한 측면이 강하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문이과 구분은 식민문화의 잔재라는 비판도 있더군요). 인문계와 자연계로 구분되어 있는 대학 교육과정을 받아들이는 데 문이과 구분이 보다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 가능할테니까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고등학교에서 문이과를 나눔으로써 정말 얼마나 '전문교육'에 기여할 수 있을까요? 이과를 예로 든다면 이과에서 더 배우는 교과는 과학 물화생지 심화과목, 수학2 등 불과 몇 개 정도입니다. 나머지 교과는 문과와 같거나 대동소이한 수준이죠. 저는 이 정도는 대학교에서 가르쳐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들 공부 안 한다고 비판하는 어른들 많으시잖아요. 대학 들어가면 이런 과목 미리 공부시키면 됩니다. 대학교육을 강화하자는 거지요. 그렇다고 현행 선택과목제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는 문이과를 구분하지 않고도 충분히 실현 가능합니다. 학생들의 교과 선택권을 강화하면서 충분히 다양한 학습경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문이과 구분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대학교육과의 연계 문제는 앞 단락에서 지적을 했구요. C.P 스노우의 1959년 작 <두 문화와 과학 혁명>에서, 두 개의 문화(인문사회, 과학기술)가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각각의 길을 가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앨런 소칼이 1996년에 일으킨 이른바 [소칼 사건] 역시 넓게 보면 두 개의 문화 사이의 서로에 대한 무지를 잘 보여준 사건이지요. 문이과 구분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을 어느 한 쪽으로 일찍 단정해버리고, 다른 쪽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하거나 그에 대한 관심은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일종의 사치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는 대학과 사회에서 두 문화 간의 뿌리 깊은 골로 이어진다고 보는데요. 특히 고위 공직에 진출하는 사람이 다른 쪽 학문영역에 대해 거의 무지하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여기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문제는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진학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요즘 고등학생의 80% 정도가 대학에 들어간다고 하니 대부분 고등학교가 대학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도 단순히 인문계, 자연계 대학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반대학 내에도 매우 다양한 학과와 전공이 존재하고, 전문대학, 특수대학들도 엄연히 많은 학생들을 수용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을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이 제법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진학에 도움을 주는 것, 더 구체적으로는 자연계와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대학에서 수학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러야 합니다. 즉 고등학교 교육은 그 자체로 목적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대학에 진학하는 다수의 학생들에게도 전문적 교육보다는 보편 교양교육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학 1학년의 많은 강좌가 교양강좌라는 것은 선생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그런 내용을 고등학교 때 보다 강화한다면 학생들의 삶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이과 통합이 이에 기여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구요.


위 글에서는 융합에 관한 내용도 조금 포함하였었는데요. 저는 사실 융합인재라고 하는 것에 그다지 전문적이지도, 강한 애정(?)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 보다는 전문교육에 앞서(혹은 더불어) 보편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믿음이 조금 있는 편입니다. 특히 고등학교 때까지는 보다 다양한 학문에 대해 경험하면서 본인의 적성을 찾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좋지 않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명연설(2005)에서, 우리가 과거에 했었던 쓸데 없어 보이던 경험들도 어떤 식으로든 미래의 삶에 연결된다("connecting the dots")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가 중퇴한 대학에서 서체학 수업을 들었던 경험이 첫 애플컴퓨터의 아름다운 서체로 연결된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말이지요. 융합인재라는 거창한 단어보다는 이와 같은 ‘소박한 이야기’를 토대로 문이과 통합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족한 필력임에도 위의 글을 적었던 것이구요. 선생님께서 걱정하시는 것에 대해서도 잘 알겠습니다. 현장에 있는 많은 선생님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니 한번 믿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긴 답글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 스티브 잡스가 2005년에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한 영상

§영상 우측 아래 네모(안에 두 줄 있는)를 클릭하면 자막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4.09.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