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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글을 써야 하는 이유.

by 한량소년 2014. 10. 12.

(이 글은 당신이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어느 블로거가 쓴 글을 토대로 나의 감상을 적은 것이다.)


▲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Writing


[당신이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 바로가기 => http://blog.daum.net/irepublic/7888729]



"물론 우리는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읽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드물고 하물며 쓰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그렇다고 할 때 과연 우리는 우리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신화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사실 내가 보기엔 많은 사람들은 과학에 시대에 살기때문에 자신이 그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할 뿐 실질적으로는 신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신화의 세계를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읽기와 쓰기, 특히 쓰기를 하지 않고 그 개인의 신화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읽기는 중요하고 좋은 것이지만 충분치 않은데 결국 남이 쓴 글이란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남이 쓴 글만을 읽는 것으로는 우리는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어디서 앞뒤가 안맞는 것인지 느끼기 어렵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연스레 자기가 쓴 글을 읽는 일이 되기도 한다. 내가 쓴 글을 읽어본다는 것은 어떤 명작을 읽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배운 사람이라고 자부하려면 글쓰기를 해야 한다. 스스로 글쓰기에 힘쓰고 그를 통해서 자기를 살피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눈을 뜨고 있지만 잠을 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을 부러워 한다. 전문가 수준의 수학문제를 풀거나 철인경기 같은 것을 즐기는 사람도 부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봤더니 내 연주는 피아니스트하고는 너무 다르더라라던가 나가서 좀 뛰어봤더니 마라톤 세계기록과는 너무 격차가 크게 느껴져서 달리기는 포기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웃음을 살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렇게 하자마자 자기의 손가락에서 프로 작가의 글과 같은 것, 고금의 고전이 될 글이 흘러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실망한다.”

"게다가 글쓰기는 말하기와 당연히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글은 안 쓰면서 지인들과 낄낄대며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삶을 사는 건지 모르는 벌거벗은 임금님일 수 있다. 자기 입에서 나가는 소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 본문에서 내가 임의로 발췌한 것이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



  한참 전에 인터넷 상에서 ‘철학을 하지 않는 닭’이라는 독특한 우화를 인상적으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좋은 글이 마침 그 저자의 블로그에 있는 글이었다. 요즘 개인적인 화두가 어떻게 좋은 글을 쓰느냐에 맞추어져 있었는데, 그가 말하는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에 무척 공감하여 나도 이렇게 글을 쓴다.


  누구나 글을 쓰다보면 내 머릿 속 생각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경험을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그저 머릿 속에만 있던 생각의 파편들을 글로써 드러내려면, 어쩔 수 없이 그 것들을 하나의 일관된 체계와 논리 안에 엮어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충분한 숙고와 고민이 따르게 되고, 기존의 파편들 간의 불일치와 충돌을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는 자연히 개인적 ‘신화’로부터의 해방을 가능케 해준다. 글쓰기를 단지 상상력의 발산 내지는 소통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의 반성적 성찰 과정으로까지 확장한 글쓴이의 시각이 인상적이다.


  나는 가끔 담벼락 같은 곳에 글을 쓰면서도 내 글을 누가 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결론은 내 글은 내가 가장 많이 본다는 것이다. 아무리 한 때 집중하여 쓴 글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흐려지고 다시 보면 늘 새롭기 마련이다. 때로는 이렇게 유치한 글을 썼었나 하며 부끄러울 때도 있다. 어떤 이는 지난 몇 년간 자신의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기도 하는데, 그야말로 사람의 변화와 성장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글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여기에는 학적인 글 뿐 아니라 에세이, 일기, 그냥 쓱쓱 쓰는 글 모두 포함된다.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정돈하는 기쁨만큼 큰 것이 어디 흔할까.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글쓰기는 타고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일 것이다. 이 뿌리는 어쩌면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 글쓰기는 선비의 것이었다. 선비는 독서가이자 학자였다. 학자는 곧 글쓰는 사람을 뜻한다. 선비는 무릇 글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말해야 했다. 선비는 자신이 쌓은 학문과 덕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 관직에 나서기도 했지만, 평생 관직을 등지고 학문에 매진하거나 후학을 양성한 사람은 ‘처사’, ‘선생’이라 하여 더 존경하였다 한다. 하지만 오늘날은 누구나 선비가 되어야 하고 될 수도 있는 시대가 아닌가. 게다가 조선시대에도 선비는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계속된 수양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글쓰기는 읽기와 더불어 수양의 과정이다.


  따라서 누구나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가깝게 여기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소싯적 내가 가장 싫어했던 방학숙제는 글짓기, 독후감 따위였다. 연필을 들고 몇 시간동안 한 주제로 글을 써내려간다는 것이 그렇게 곤혹스러울 수 없었다. 12년 간 국어교육을 받았음에도(시수도 제일 많다.) 글쓰기가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 삶의 문제도 아니었고,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어떻게 써야 할지를 잘 몰랐다. 스스로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니 더욱 더 글쓰기를 기피하게 되는 악순환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보니 글쓰기는 생활이어야 하는 것이었다. 남들게 보이기 위해 힘들게 잘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아는만큼 생각한대로 솔직하게 쓰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국어교육은 그저 좋은 작품을 찾아서 함께 음미해보고(지금처럼 분석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글을 자유롭게 써보기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운동과 예술을 직접 행위하며 즐기기도 하듯이, 시와 소설, 에세이를 직접 쓰며 즐기는 풍요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다보면 내 생각이 생기고 그 것을 글로 쓰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국어선생님들께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오히려 국어 이외의 다른 교과를 공부하며 글쓰기에는 더 큰 도움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일단 나부터 말하기를 좋아하는 만큼만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겠다. 물론 다른 사람의 말과 글에 우선 귀와 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2014.10.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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