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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옥상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리고, 공중에서 한두 바퀴 도는 건 예사인 스포츠인지 예술인지 모를 그런 게 있다. 한 때 '야마카시'라는 명칭으로도 알려진 적이 있지만 그건 이 이상한 곡예(?)의 창시자 중 한 명이 속했던 단체 이름일 뿐, 공식 명칭은 '파쿠르'다. 이름은 낯설더라도 유튜브나 페북 등에 심심찮게 영상이 돌기 때문에 누구나 보자마자 이게 무엇인지는 알아차릴 것이다.
보통 사람(나를 포함)에게 파쿠르는 너무 멋진 데 반해 그 이상으로 무모해 보이기 마련이다. 당장 검색창에 "파쿠르 부상", "파쿠르 사고"를 입력해 보자(심호흡 먼저). 몇 년 전엔 한 유명 파쿠르 장인이 건물에서 추락사 한 사건도 있었다. 나처럼 무릎 부상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은 파쿠르 동작을 볼 때마다 가만 있는 내 무릎도 아프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동작들로 가득한 파쿠르는 과연 정상적인 활동인지 의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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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런 위험한 걸 왜 하나 싶어 몇 년 전 파쿠르를 자세히 찾아본 적이 있다. 너무 인상적인 내용을 발견했는데, 파쿠르에서 말하는 '위험'은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것이다. 하나는 예상 가능하고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리스크(risk)'이고, 다른 하나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도 모르고 대비할 수도 없는 '데인저(danger)'이다. 과일을 깎으며 베이지 않으려 조심하는 것은 리스크에 대비하는 것이고, 날벼락을 맞는 건 데인저에 놓이는 것이다. 둘 다 우리말로는 '위험' 정도로 번역하겠지만, 그 둘의 의미와 쓰임은 제법 다르다.
파쿠르는 '리스크(risk)'를 다루는 활동이라고 한다. 파쿠르는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위험을 '관리(manage)'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맞닥뜨린 위험을 관리하고 나아가 극복하기 위해선 정신적, 신체적 단련이 요구되는 게 당여하다. 파쿠르 장인들은 중년 이상의 나이가 되어서도 자신의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훈련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까지 알고 나니 파쿠르가 더이상 무모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깐이나마 나도 도전해 볼까 하는 호기심과 열정이 타오름을 느꼈다. 물론 지금 나는 파쿠르의 입문 단계도 통과할 능력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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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엇을 하든 닥친 위험을 예측 가능한 것(risk)과 그렇지 못한 것(danger)으로 나누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즉 리스크와 데진저를 바로 봐야 한다. 일단 처음엔 잘 모를 수 있으니 주변의 도움을 기꺼이 받자. 그리고 잘 모르겠으니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생각만은 버리자. 단순히 무지로부터 비롯된 두려움은 아무런 시도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독약과 같다.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는 가운데 드디어 온라인 수업이 시작됐다. 일찍이 없었던 상황에 대처하는 여러 사례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은 애초에 시도도 하지 않기로 한 어떤 곳. 모든 수업을 E학습터(또는 ebs)로만 진행하는 어떤 학교. 새로운 도전과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는 분과 이를 반대하는 누구. 며칠새 참 다양한 양상을 지켜보거나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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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의 한 신기한 학교는 처음엔 쌍방향 수업에 부정적이었지만, 이내 그 두려움을 떨치는 데 성공한다. 상황과 위험을 바로 알고 구성원이 힘을 모아 상대하니, 생각보다 그 위험(risk)이 크지 않다는 것과 별거 아닌 위험은 관리(manage)하면 그만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위험을 손에 쥔 자'는 한 없이 여유롭다. 마치 파쿠르 장인들처럼. https://youtu.be/EkQgsAlqo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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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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