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드리치 보러 가서 모로코 응원한 썰. [3,4위전] 리뷰>
크로아티아와 모로코의 3,4위전이 있었다. 월드컵 3,4위전은 보통 재미가 없다는 게 정설이다. 올림픽에 비해 3위의 의미가 크지 않을 뿐더러 3,4위전에 오른(또는 떨어진) 두 팀 간에 긴장감도 덜하기 때문이다. 2002년의 한국 대 터키 전도 애초에 긴장감 없이 치러졌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두 팀 선수들이 서로 손잡고 훈훈~하게 마무리했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양팀 모두 시작부터 공격적으로 경기에 나섰고, 시종일관 승리를 향한 선수들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이번 경기를 모드리치, 로브 렌, 비다 등 이번이 마지막이 될 선수들(특히 모드리치)을 위한 헌정으로 여기는 것 같았고, 모로코 선수들은 아프리카를 대표해 하루하루 역사를 써내려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역사책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결과는 체력과 교체전력에서 조금 더 여유가 있었던 크로아티아의 승리였다. 모로코도 몇 차례 좋은 찬스가 있었지만 마지막 결정력이 아쉬웠다. 축구를 해본 사람은 다 알듯이, 체력이 빠지면 마무리에서 섬세함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때는 선굵게 한 방을 노리는 게 유효할 수도 있는데, 모로코의 스타일이 원체 그렇지도 않으니 쉽사리 해법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브로조비치 등 주전을 여럿 뺀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오히려 프랑스를 상대할 때보다도 무기력해 보였다.
그러다 거의 홈구장을 방불케 하는 모로코팬들의 광적 응원(심지어 이 사람들 파도타기 함ㅋ)과 선수들의 헌신적 플레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 어느새 모로코를 응원하게 됐다. 나는 본래 크로아티아 팬인데 오늘 만큼은 모로코를 응원하기로 한 것. 어차피 크로아티아는 지난 번에 2등 했자나.ㅎ 모드리치, 오늘 하루만 양보하자!
계속 1:2로 끌려가던 모로코는 승리를 향한 갈망을 더욱 드러냈는데, 심판 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부터 이를 알 수 있었다. 프랑스전에서 페널티킥을 도둑맞았던(오히려 옐로카드를 받은..) 트리우마 때문일까. 수비수들의 연이든 부상과 얇은 선수층 때문에 심지어 중앙미드필더 암라바트는 막판 중앙수비를 맡기까지 했지만, 모로코는 결국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동화는 결국 동화일 뿐.
(여담으로 월드컵 때마다 반복되는 강팀편향적 판정시비는 좀 그만 보고 싶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대표팀 경기를 제외하면 나에게 최고의 팀이었던 크로아티아와 모로코의 퇴장을 축하합니다.
모로코는 반짝으로 끝내지 말고 앞으로 쭈욱 잘하자~ 아약스 때만큼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하는 지예시도 이참에 폼을 되찾으면 좋겠다. 이미 정상급인 하키미는 최정상에서 만나자. 암라바트, 우라히, 부팔, 엔네시리 등 새로 알게 된 선수들도 기대해볼게. 특히 우라히는 쪼끔만 몸을 키워보자.
크로아티아는 세대교체 잘해서 유로2024 때도 잘해주기 바란다. 그바르디올은 레알이든 첼시든 아무 빅클럽이든 가서 리그를 폭격해주면 좋겠고, 유라노비치와 소사, 마예르의 성장을 기원한다. 만주키치 이후 불안해진 스트라이커 자리의 대안을 확실하게 발굴해야 하는 과제도 남았다. 로브렌, 비다의 아름다운 퇴장을 축하한다.
모드리치의 라스트댄스? 보아하니 유로2024까지는 어쩌면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살짝 무리다 싶지만 그래도 우승 한 번 하고 은퇴하면 좋겠다. 폼 떨어진 선수는 가차없이 팔아치우는 레알에서도 2년만 더 버텨주세요. 제가 져지 한 벌 살게요. (참고로 난 레알팬 전혀 아님)
2022.12.18. 졸린 새벽
(이 짓도 이제 하루 남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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