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갈 걸 그랬다. [음바페:레반돞]16강전 프리뷰>
월드컵 조추첨 당시(3월31일)만 해도 저는 이번 월드컵을 카타르에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직업상 방학 때가 아니면 길게 휴가를 내기 어려운 환경인데, 지금 근무하는 곳은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기회죠.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모르니, 휴가 기간도 구체적으로 계획해보며 며칠간 설렘 속에 지내기도 했어요. 월드컵에서 대표팀의 경기를 직접 본다는 건 너무 흥분되는 일이잖아요.
이제껏 월드컵을 직관해본 적은 있어요. 2002년 월드컵이죠. 한국이 조2위로 16강에 진출하기를 고대하며 16강전 티켓을 예매해두고 기다렸죠. 우리가 조2위로 올라가면 아마도 다른 조 1위인 이탈리아와 만날 것으로 예상하고 전주월드컵경기장의 해당 티켓을 사둔 것이죠. 이 티켓을 사기 위해 친구가 일요일 아침 일찍 서울시청 앞에서 긴줄을 서기도 했습니다. 100달러짜리였고 당시 환율로 128,000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고 말았어요. 조별리고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이 이영표의 크로스를 받아 결승골을 성공시킨 거죠. 주변의 모든 사람이 환호를 지르며 기뻐하는데, 그 자리에서 저만 얼음처럼 몸이 굳어져 버렸네요.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같아요. 서울시청에 꼭두새벽부터 가있던 그 친구 말입니다. “야! 우리 ㅈ됐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거기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전주 말이에요. 그때까지 저는 전주땅을 밟아본 적도 없었는데, 다른 나라 경기를 보러 굳이 그 먼 데까지 가야 하는지 고민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하필 우리 조에서 함께 올라간 팀이 미국대표팀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루이코스타, 루이스피구는 박지성 때문에 짐을 싼 지 오래죠. 근데 더 웃긴 건요. 미국의 상대팀이 이탈리아도 아니라 멕시코가 됐다는 거예요. 허허 참.
그래도 그냥 가기로 하고 전주행 고속버스에 올랐습니다. 전주월드컵경기장 앞은 참 재밌는 광경으로 가득했어요. 멕시코 아저씨들 무리가 그 특유의 창이 큰 모자 쓰고 기타 치면서 걸어다니구요. 유력한 16강 후보였던 아일랜드의 응원단 모습도 제법 보였습니다. 원래 조1위가 유력했던 이탈리아의 응원단도 일부 보이긴 하더군요. 결정적으로 저처럼 우리나라가 조2위 할 줄 알고 표를 사둔 붉은악마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ㅋㅋ
이날 경기가 웃긴 게 뭐냐 하면요. 경기장 안에 제일 많은 붉은 악마들이 죄다 멕시코를 응원했다는 거예요. 아마도 당시 전국적으로 반미감정이 좀 거셌던 시기였던 게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구요. 아무튼 붉은악마의 응원 덕분이었는지(?), 16강 공무원 멕시코는 손쉽게 8강에 진출합니다. 엉뚱하게 다른 나라 경기를 보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월드컵 경기를 직관한 경험은 이렇게 두고두고 추억이네요.
경기를 보다 열받는 일도 있었어요. 경기장 입구 부근에 경기 시작 전부터 고딩으로 보이는 애들이 잔뜩 있었거든요. 근데 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난 후 그 친구들이 단체로 입장하는 거예요. 이건 보나마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학생들을 동원(무료)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어요. 당시 타팀의 경기엔 경기장이 텅텅 빈 문제가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된 적이 있으니까요. 내가 피같은 128,000원을 주고 산 티켓을 저렇게 공짜로 풀어버리니 열받지 않겠어요.
이번에 카타르에 갔어야 했습니다. 8개 경기장이 모두 30km 이내에 있다고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땅덩어리 큰 나라였으면 이동하는 것만도 일이었을텐데, 카타르에선 한국팀 뿐 아니라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매일 볼 수 있었을테니 너무 아쉬운 거죠. 모드리치, 덕배, 레반돞, 그리고 메시? 이 선수들을 언제 또 눈앞에서 볼 수 있겠어요. 그깟(?) 왕복 비행기삯 300이 뭐라고… 미안하다. 너무 비쌌다…
4년 뒤엔 북중미3국에서 한다던데요. 그때는 미국 가서 직관할 생각입니다. 일주일 이상 휴가를 낼 수 있도록 잘 설계해보죠. 그깟 공놀이인 건 맞는데, 축구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런 빅이벤트가 참 크네요. 이렇게 20년 전 추억도 소환하게 되는 거 보면요. 비행기표 때문에 결단을 포기하지 않도록, 미리 월드컵 기금이라도 만들어야겠어요.ㅋ
16강전부터는 경기를 모두 새벽에 하니 TV로 보는 것도 힘듭니다. 축구 보다가 병날 것 같으니, 몸 생각해서라도 적당히 봐야겠어요. 오늘 프랑스와 폴란드 경기는 잠깐만 보다 잘 생각입니다. 현재까지는 폴란드가 괜찮네요. 폴란드가 지금처럼 수비간격을 좁게 잘 유지하고, 레반돞과 지엘린스키가 한 방을 노린다면 8강도 불가능한 건 아니죠.
마침 방금 음바페가 엄청난 돌파를 보여주네요. 순간스피드가 시속35km라네요 허허. 손흥민도 이번 대회에서 그 속도를 찍은 적이 있다고 하니, 손흥민도 대단하긴 합니다. 그리즈만도 조별리그 때보단 폼이 좋아진 것 같아서 위협적이네요. 하지만 우리의 ‘국방동맹’ 폴란드! 힘내봅시다~ 오늘 경기장도 한국 건축사무소에서 설계했다고 해요. 우주의 기운이 폴란드로 모아지는 것 같아요.
메시가 그랬듯, 레반돞 한 번 가자! 난 잔다. 끝.
2022.12.05.월. 새벽.
(지금 막 지루에게 먹혔다. 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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