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책임(Burden of Proof)을 누가 질 것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필히 주장하고 설득해야 한다. 아이들은 국어나 사회 교과에서 근거를 들어 주장하고 설득하는 방법을 공부한다. 물론 민주적 교실이라면 학급살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떤 주장이든 그에 걸맞는 근거는 있기 마련이고, 그 반대주장에도 나름의 근거는 있다. 그래서 토론을 통해 어느 것이 더 받아들일 만한지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리적 시간과 역량의 한계, 환경의 제약 때문에 늘 그렇게 할 수는 없으므로, 어느 선에선 단순하게 사안을 처리할 필요도 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와서 무언가 요구할 때가 그렇다. 나는 이런 때 <입증책임>이란 원리를 들이민다. 이 말 뜻을 학기초부터 아이들에게 수시로 주지시킨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입증책임(立證責任, burden of proof)이란 "거증책임이라고도 하며 법원이 판결을 내리는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어느 한쪽의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가정하여 판단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러한 가정으로 인해 당사자의 한쪽이 입게 되는 위험 또는 불이익”이다.
▲출처: http://www.helloiplaw.com/?p=120
형사소송에서 검사가 입증책임을 지고, 피의자는 우선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검사는 피의자의 유죄를 증명하기 위해 증거를 제출하고 판사 또는 배심원을 설득해야 할 책임을 진다. 피고측에선 검사의 주장을 반증하면 그만이다. 좀더 쉽게 입증부담을 피의자가 지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네가 무죄란 걸 증명해봐~” 이런 상황에서 누구든 범죄자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봉건시대나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무지막지하게 자행된 고문 역시 입증책임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민사소송에선 사안에 따라 입증책임을 질 당사자를 달리 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정확한 기준 잘 모름).
일상에선 이렇게 주로 법률적으로 쓰이지만, 일반적 논증 과정에서도 입증책임을 누가 지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안전성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식품을 판매하려 한다면, 유해성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기업 중에 누가 입증책임을 져야 할까? 당연히 기업이다. 즉, 입증의 부담은 positive한 주장을 하는 측에서 진다. ‘positive’는 ‘긍정적’이 아니라, ‘확신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겠다. 즉 먼저 주장하는 측, 또는 먼가 행동을 요구하는 측에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지는 부담이 바로 입증책임이다.
오늘도 이야기 했다. "나의 신성한 노동력을 동원하고자 하는 모든 의도는 '입증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요즘 일이 많이 줄었다. 끝.
2017.09.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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