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임원선거의 3대 키워드: 지난 대선에 비추어
초등학교에서 임원선거는 '선의의 경쟁'이란 옷을 입고 '냉정한 승부'가 허용되는 몇 안되는 공식 활동 중 하나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대표자를 선발하는 '공정한 절차'로서 필수불가결하며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임원선거는 어린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직접 체험해 본다는 면에서 교육적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학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한 축으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한다. 반면 아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공식적으로 확인되며, 일부 낙선한 학생은 심한 정신적 타격을 입기도 하는 부정적 측면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 이 후자의 문제를 고려하여, 이번 선거 과정 중엔 아래 3가지를 당부하였다(다음 단락부터). 마침 지난 5월 대선을 경험한 아이들이기에 대선과 임원선거를 빗대어 설명하였더니 도움이 되었다. 참고로, 우리 학교는 회장 1명, 부회장 2명(남/여)을 선출한다. 회장과 부회장에 동시 출마할 수 있고, 투표는 회장-부회장 순으로 진행한다. 이번에는 회장에 4명, 부회장에 여 2명, 남 4명이 각각 입후보했다. 후보자 연설에 이어 선관위원 3명이 투개표를 진행하였다.
#1. 떨어진 자에게: 다양한 후보자의 가치.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하였다고 '패배'로 생각하면 안된다. 선거에 입후보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역할을 한다. 모든 후보자는 서로 경쟁하며 다른 후보자와의 차별점 내지는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며, 그것들은 공약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된다. 다양한 후보자의 존재는 후보자들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적절한 긴장 상태를 지속시키는 자극으로 작용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다섯명의 후보는 자기 혼자만의 철학과 지향만으로 선거에 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탐색하며 대중의 반응을 살피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각자 자신의 역할과 자리를 새롭게 정하고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과정을 끊임 없이 거쳤다. 이 과정에서 후보자 자신이 제일 많이 성장한다. 그중 누군가는 당선이 되면, 그에게는 다른 후보자의 DNA가 남는다. 이렇게 낙선자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살아 있다. 그러니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
#2. 당선된 자에게: 겸손해야 할 이유.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승리감에 도취되기 쉽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을 뽑지 않은 유권자의 존재다. 그들 유권자의 선택에는 어떤 가치관과 욕망이 내재하는지 고려하여 이들까지도 아우를 준비를 해야 한다. 당선자에겐 다른 후보의 장점과 그들이 보여준 좋은 생각들은 적극 수용하는 너른 아량도 필요하다. 앞으로 모든 대중을 포용하는 일은 더 큰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불과 41% 남짓의 지지로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달리 말하면 그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 60% 가까이 된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선 그 60%의 나머지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고 그들로부터 인정받을 것인지에 달렸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바탕은 당연히 '겸손'이다. 여러분도 과반 이하의 표를 얻어 당선되었다는 걸 잊지 마라.
#3. 선거에 참여한 모든 이에게: 비판적 지지의 필요성.
투표과정에서도 나타났지만, 선거에서 낙선한 친구는 매우 서운할 수 있다. 자신이 투표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 서운한 친구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당선된 친구나 그를 뽑은 사람들이 원망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빨리 정리하자. 대통령 선거에서 개표가 진행되고 당선자의 윤곽이 어느 정도 그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함께 경쟁했던 다른 후보들이 일제히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건 어느 민주주의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전통이다. 더 신기한 일이 있다. 아까 말했듯 문재인 대통령은 불과 41% 득표율로 당선되었지만,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지지율은 거의 90%에 육박했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약 80%의 지지도가 나온다. 즉 그를 뽑지 않았던 국민들도 일단 그를 지지해준다는 뜻이다. 대신 새 대통령이 제대로 국정을 수행하는지 매의 눈으로 감시할 것이고, 제대로 못한다면 더욱 엄하게 꾸짖을 것이다. 이것을 비판적 지지라고 부른다. 우리가 뽑은 임원들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주되 잘못이 있다면 비판할 수 있도록 늘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아이들이 내가 해준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마침 종이 쳤고, 모두 마룻바닥에 앉아 공기놀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끝.
2017.09.0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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