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표팀은 그동안 불가능한 줄 알았던 빌드업으로 경기 주도권을 잃지 않는 새로운 방식을 정착한 점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고 본다. 그 결과가 지난 1차전 우루과이전이고 오늘 가나전이었다. 우리팀은 오늘 경기에서 전반 25분 동안 철저하게 경기를 지배하며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을 줬다. 물론 첫 골을 허용하기 전까지는..
특별한 전술적 특징 없이 몇몇 선수의 개인전술에 의존하는 가나에게 두 번이나 일격을 당한 것은 우리 팀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아에유, 쿠두스 등 개인기와 스피드가 뛰어난 가나 선수들은 두세 명의 우리 수비수를 가볍게 제압할 뿐 아니라, 제공권 경합 상황에서도 한국 수비를 압도했다. 즉 우리는 피지컬과 기술적 열세를 오직 전술과 조직력으로 극복해야 했던 것.
첫 골 이후에 곧바로 두 번째 골을 허용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상대 어시스터가 너무 자유롭게 크로스를 올리도록 놔두고 말았는데, 바로 앞에 있던 선수의 문제라기보단 상대 빌드업에 끌려다니며 전방압박을 하다 공격진과 수비진의 간격이 벌어진 문제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여기엔 쓸데없이 상대 수비진까지 압박을 하다 우리 미드필더들에게 수비부담을 전가한 공격수들의 책임이 크다.
후반 들어 이강인과 나상호가 투입되며 공격의 활기가 되살아난 것은 용병술의 승리로 볼 수 있겠다. 그건 반대로 말하면 권창훈과 작은정우영의 선발카드가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선수는 전방에서 열심히 움직이긴 했으나, 각도를 꺾을 줄 모르는 경주마 시야(권)와 투박하고 딱딱한 플레이(정)로 팀전술에 융화되지 못했다. 특히 우루과이전 선발진(나상호, 이재성)을 빼고 나온 선수들이라 아마도 두고두고 말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우리팀은 전반내내 김진수와 김문환 등의 활발한 공격가담을 통해 양 측면에서 여러 차례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미숙한 퍼스트터치로 쉽게 공을 뺏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두 번째 골을 도왔던 김진수는 전반전에만 여러 차례 볼을 뺏기며 상대의 역습을 자초했었고, 그건 권창훈도 마찬가지. 요즘 ‘순두부터치’란 말이 유행인데, 가나 선수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었다. ㅁ
이강인은 확실히 다른 클래스의 선수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쫄지 않은 대담함과 섬세한 터치, 넓은 시야와 강력하고 정확한 킥, 과감한 슈팅 모두에서 어나더레벨을 보여줬다. 여기저기 보니 이강인을 전반에 투입하는 게 어땠을까 하는 의견이 있던데, 그것 만큼은 잘 모르겠다. 월드컵 수준에서 90분 전체를 소화할 충분한 체력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그가 조커로서 위협적이라는 설명도 나름 일리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일찍 실점한 만큼 후반과 동시에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선발로 나왔으면 좋았겠다 싶은 경기였다)
조규성은 이번 대회에 앞서 내가 키플레이어로 예상한 선수였다(내 주변 사람들은 알고 있음ㅋ). 조규성이 살기 위해선 조규성의 머리를 활용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 선수들의 크로스 능력을 보아 손흥민을 제외한다면 이강인이 확실한 파트너라고 볼 수 있다. 이강인은 정확한 택배크로스가 가능한 선수고, 마요르카에는 그의 파트너 무리키가 있다. 190이 넘는 장신으로 팀내 최다득점자이며 헤더라는 확실한 무기를 갖춘 선수다. 오늘 이강인은 투입되자마자 조규성의 머리를 향해 정확한 크로스를 배달했다. 조규성 ‘한국의 무리키’고, 그를 살리는 데 이강인만한 카드가 없다.
조규성은 오늘 네 번 이상의 유효슈팅을 기록하는 등 확실한 클로저의 본능을 보여줬다. 벤제마나 지루와 같은 연계 및 볼간수 능력만 더 향상시킨다면 한국축구에 전례 없던 대형 스트라이커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고작 24살이더라. 그에게는 손흥민과 이강인이라는 역대급 조력자들도 있다.
후반전에 추격골을 연이어 성공한 것은 어쩌면 운이 좋았던 것이기도 한데,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추가골을 내준 것이 결국 패배로 이어졌다. 이후 일방적 공격을 하면서도 득점을 하지 못한 것은 볼만 돌리다 과감하게 마무리짓지 못하고 패한 어제의 일본을 연상케 한다. 우리는 일본에 비해 과감한 면이 있으니 좀 더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한국은 일본을 그대로 따라하고 말았다. 대체 손흥민은 왜 감차를 안 하냐고.
결과적으로 패배한 경기지만 두 골을 먼저 내주고도 기어코 동점을 만든 점이라든지, 90분 내내 경기를 주도한 점이라든지, 끝까지 우리 식의 스타일을 지켜간 점이라든지 칭찬할 점이 무척 많다. 대표팀이 이렇게 일관된 전술수행능력과 기대감을 주는 경기력을 보여준 적이 일찌기 있었는지 떠올려 보자. 이렇게 된 거 마지막 경기에서 포르투갈에게도 물러섬없는 경기를 펼쳐주기만 바란다.
그럼 마지막까지 벤투는 명장이다. 끝.
2022.11.29.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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