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을 이길 때 사우디는 라인을 한참 내리고 촘촘한 대형으로 상대에 맞섰는데, 오늘은 정반대로 스피드와 개인기를 바탕으로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는 전략으로 나왔다. 폴란드가 아르헨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스피드가 느리고 빌드업이 강하지 않은 팀인데다 아르헨을 누른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 도사리, 칸노 등을 중심으로 마치 스페인이나 남미팀의 경기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경기력이 좋았다.
하지만 폴란드에는 레반돞이 있었다. 폴란드는 사우디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실리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최전방스트라이커로 나온 레반돞은 김민재의 팀동료 지엘린스키에게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주고 어시스트를 기록한다. 전후반 내내 집중 견제를 받던 레반돞이었지만, 후반 들어 허술해진 상대 수비의 빈틈을 노려 드디어 첫골을 성공했다.
레반돞은 메시, 호날도가 지배한 지난 10년의 축구사에서 그들 바로 뒤에 위치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2020년에는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리그에서 경이적인 득점 퍼포먼스로 발롱도르 일순위로 거론된 바 있지만, 코로나19로 시상이 취소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해에는 많은 논란 속에서 메시에게 발롱도르를 내주기도 했다(도둑맞았다는 비판이 많았음).
올 해는 바이에른뮌헨을 떠나 바르셀로나로 팀을 옮겨 맹활약 중이다. 그가 유독 월드컵에서만 골을 넣지 못 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지난 월드컵부터 4경기 연속 무득점이라는데, 그만큼 월드컵에서 골을 넣는다는 건 개인의 능력 외에도 동료의 도움과 운도 따라줘야 가능하다. 세계 최고의 도우미들에 둘러쌓여 주기적으로 약팀도 만나는 리그와 월드컵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것. 메시는 레반돞에 비하면 한참 나은 상황인 셈이다.
그래서 오늘 경기는 사우디를 응원하면서도, 은근히 레반돞의 득점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나은 결과는 사우디와 레반돞에 공평하게 득점하고, 기왕이면 사우디가 승리하는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사우디는 좋은 찬스를 모두 날리고 패배하고 말았다. 아르헨전에선 일발필중 하던 마무리슈팅이 죄다 하늘로 향하더니만, 심지어 페널티킥마저 슈체스니의 선방에 막혀버렸다.
축구가 참. 사우디가 페널티킥만 넣었어도 경기 양상이 달라졌을텐데.. 수비실책으로 레반돞에게 골을 헌납하지만 않았더라도 한두 번의 기회는 더 있었을텐데.. 슈체스니의 신들린 선방만 아니었어도 결과는 달라졌을텐데.. 아무리 두들겨도 결정하지 못 하면 과정은 지워지는 결과론의 세계. 아쉬워도 물론 그게 실력 아니겠냐만은.
앞선 경기에선 호주가 알제리를 꺾었다. 호주를 아시아에 끼우는 게 어색하긴 하지만, 아시아 지역예선을 통과한 범아시아팀이니 아시아팀의 승리횟수는 이제 4개가 되었다. 사우디가 다섯 번째 승리에 실패했으니 한국이 해보는 걸로. 월요일에 봅시다.
2022.11.26.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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