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를 펠레스코어라고 부루는데, 제일 재밌는 스코어란 뜻이다. 보통 맞는 말이다. 골이 안 나는 경기는 대체로 지루하고 재미 없으니까. 비슷하게 야구에서도 7:6인가 그 정도 점수가 나와야 제일 재밌다고 한다. 오늘 크로아티아와 벨기에의 조별리그 세 번째 경기는 0:0으로 무승부가 됐다. 일반적 기준으로는 제일 재미 없는 스코어다. 그런데 난 너무 재미있었다.
양팀에는 최고의 미드필더를 꼽을 때 절대 빠지지 않는 두 월클 모드리치와 덕배가 있다. 두 축구도사의 향연을 한 화면으로 본다는 것만으로 오늘 경기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경기다. 85년생 모드리치는 만 37 나이에도 여전히 이번 대회에서 최고 수준의 실력을 보이고 있고, 덕배는 현재 커리어 정점에 올라있는 선수다(단 맨시티 한정ㅋ).
처음 시작은 벨기에의 우세 속에서 덕배가 빛났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소속팀에서처럼 활약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종종 듣는 덕배지만, 오늘 만큼은 날카로운 돌파와 패스로 경기 초반 팀 공격을 적극 이끌었다. 왼쪽 윙포워드 카라스코가 조금만 더 섬세했다면 여기서 일찍 첫 골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전반 15분 전후부터는 점차 크로아티아의 흐름으로 넘어간다. 크로아티아의 중원엔 모드리치, 코바치치, 브로조비치가 있었다. 이 선수들은 얼마나 공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차는지, 템포를 전혀 죽이지 않으면서도 좁은 공간에서 눈부신 탈압박과 공수전환 능력을 보여준다. 우와 진짜 요 세 명 그대로 우리 대표팀에 데려다 놓고 싶을 정도.
반면 벨기에는 카라스코와 메르텐스가 덕배의 킬패스를 돌아가며 날려버리는데, 내가 보면서도 실소가 나올 정도였다. 어디 듣보잡 선수도 아니고 그동안 꽤나 봐왔던 선수들이 차례대로 저러니 오늘 벨기에는 어렵겠다 싶더라. 본인도 힘이 빠졌는지 덕배도 초반과 같은 활기찬 모습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하더니만, 벨기에는 완전히 흐름을 잃고 크로아티아에게 끌려가기 시작한다.
마침 반대편에서 모로코는 캐나다를 상대로 벌써 두 골을 넣고 2승 고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벨기에는 크로아티아를 꼭 이겨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고, 크로아티아 역시 벨기에게 지면 탈락할 위기에 처한다. 두 팀이 서로 사이좋게 16강으로 갈 방법은 사라졌다. 물론 비겨도 조2위가 되는 크로아티아가 살짝 나은 상황이긴 하지만.
벨기에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몸이 좋지 않은 루카쿠를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는데, 루카쿠는 오른발로 한 번, 왼발로 한 번, 머리로 한 번, 경기 종료 직전 가슴으로 한 번 더, 건드리기만 하면 들어갈 골을 날려버린다. 저거 다 넣었으면 포트트릭인데ㅋㅋ 미쳤다 진짜.
이 와중에 크로아티아는 점점 더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특히 눈에 띈 선수는 다음 두 수비수. 손흥민보다 더 큰 안면마스크를 쓰고 나와서 위기순간마다 동해번쩍 서해번쩍 한 그바르디올은 이제 고작 스무살. 센터백이 맞나 싶을 정도로 대담한 드리블로 공격에 가담한다. 거의 윙포워드처럼 뛰던 왼쪽풀백 소사는 어느새 최후방에 와있기를 90분 동안 반복한다, 두어차례 찬스에서 보여준 정확하지 않은 마무리는 살짝 아쉬웠던 점.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 같은 구유고슬라비아 지역의 축구에서 보이는 특징이 있는데, 참 간결하면서 헌신적이며 조직적이란 거다. 이들은 탄탄한 기본기와 체력을 바탕으로 잔꾀를 부리지 않고 쓸데 없는 움직임이 없다. MBC캐스터의 표현처럼 “참 아름다운 축구”를 한다. 그 정점이 선수로는 모드리치고, 팀으로는 현 크로아티아다.
반면 벨기에는 이름값이 무색한 졸전을 하고 말았다. 덕배의 택배를 수차례 날려버린 카라스코나 포트트릭을 마다한 루카쿠나… 나는 오래 전부터 크로아티아 팬이니 다행이긴 하지만, 5분을 남기고 아자르까지 투입하며 승부수를 던진 벨기에를 보는 마음이 너무 짠했다. 이렇게 황금세대는 져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오늘 후반전은 5분 추가시간이 주어졌는데, 한국:가나 전을 맡았던 앤서니 테일러 주심은 추가시간 4분50여초만 지난 순간 경기를 끝내버린다. 아니 이 인간 뭐야? 우리 코너킥도 삭제해버리더니만ㅋ 혹시 테일러씨 ‘붉은악마’싫어하심? (붉은악마의 원조는 원래 벨기에임)
덕배가 왜 국대 오면 맨시티에서만큼 못하는지 알겠다. 저런 공격수들이랑 축구할맛 나겠냐.
2022.12.02.금.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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