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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철학&문학

칸트, 판단력비판 요약(취미판단의 제2계기)

by 라떼아범 2014. 9. 28.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3비판서-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판단려비판-중 제3비판이라 불리는 [판단력비판]을 읽고 요약한 것이다. 강독 강의 중 제출한 내용을 편집하여 옮겼다.)


※ 우선 [판단력비판]에 대한 설명은 다음 위키백과의 설명을 참조하기 바란다.

  ==> http://ko.wikipedia.org/wiki/판단력비판

※ 김상현 역(2005)를 중심으로 백종현 역(2009)과 영문판 Werner.S 역(1987)을 참조하였다.





▼ 임마누엘 칸트 (출처:위키백과)









제1절. 감성적 판단력의 분석학

제1장. 미의 분석론




취미판단의 제2계기: 분량의 범주에 따른 고찰


6. 미란 개념 없이 보편적 만족의 대상으로 표상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일체의 관심과 무관하게 자신이 어떤 대상에 대해 만족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다면, 그는 그것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만족의 만족의 근거를 내포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판정할 것이다. 따라서 자기와 유사한 만족감을 누구에게나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진다고 믿을 것이다. 감성적 판단도 사람들이 그 판단의 타당성을 누구에게서나 전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 판단과 유사함을 가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보편성은 개념들로부터 나오는 것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개념으로부터 쾌-불쾌의 감정으로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취미판단에는 일체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의식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들에 대해 타당하다는 주장이 성립해야 한다. 즉 취미판단에는 주관적 보편성에 대한 요구가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7. 상술한 특징에 의한 미와 쾌적 및 선의 비교

  쾌적한 것과 관련하여, 그 판단의 타당성이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국한됨을 인정한다. 따라서 쾌적한 것에 관한 한, 누구나 자신의 각자 고유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원칙이 타당하다. 그러나 누군가 어떤 것이 아름답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만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판단하는 것이며, 미에 관해서는 그것이 마치 사물의 속성인 양 말하는 것이다. 

  쾌적한 것에 대한 판정에서도 비교적으로 보편성이 취해질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에는 단지 일반적(general)인 규칙들이 있을 뿐, 보편적(universal) 규칙은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에 관한 취미판단은 보편적인 규칙들은 없으되 보편성(주관적 보편성)을 확립하려 하고 또 그것을 요구한다. 선에 관한 판단들 또한 당연히 모든 사람들에 대해 타당성을 요구하지만, 선은 개념을 통해서만 보편적 만족의 대상으로 표상된다. 그러나 쾌적과 미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다(주관적 만족의 대상을 표상한다).


8. 취미판단에서 표상하는 만족의 보편성은 단지 주관적인 것이다.

  취미판단의 ‘감성적 판단의 보편성’이라는 특수한 규정은 우리 인식 능력의 고유한 특성이다. 취미판단은 대상에 대한 만족을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하지만, 이것은 결코 개념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다. 나아가 보편타당성에 대한 이러한 요구는 어떤 것이 아름답다고 언명하는 우리의 판단에 본질적으로 속하는 것이다. 쾌적한 것에 관한 취미는 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과 달리, 미에 관한 취미판단에 있어서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요구하는, 이른바 일반적으로 타당한 (공적인) 판단을 내린다. 전자는 감관의 취미, 후자는 반성의 취미라고 부를 수 있다. 

  취미판단에서 대상의 개념에 근거하지 않은 보편성이란 감성적인 것이다. 그러한 보편성이란 판단의 객관적 양이 아니라 주관적 양만을 내포하는 것이고, 이러한 보편성을 일반타당성(공통타당성)이라고 한다. 이 말은 표상이 쾌-불쾌의 감정과 맺는 관계가 모든 주관에 대하여 타당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감성적 보편성은 ‘아름답다’는 술어를 논리적 범위 전체에서 고찰된 개념과 결부시키지는 않지만, 이 술어를 판단자들의 범위 전체로 확장시킨다.

  논리적 양의 면에서 모든 취미판단들은 단칭 판단이다. 취미판단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판단의 양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선에 대한 판단은 객관을 인식함으로써 성립되는 판단이어서, 논리적 보편성을 가진다. 그에 반해 미에 대한 판단은 (타인과) 보편적으로 일치했다고 믿고, 모든 사람들의 찬성을 요구하데 된다. 

 취미의 판단에서는 개념들의 매개없는 만족에 관한 그와 같은 보편적 일치만이 요청된 뿐이며, 따라서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타당하다고 간주될 수 있는 감성적 판단의 가능성이 요청된다. 보편적인 일치란 단지 하나의 이념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답다’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 이념과 관련시켜 하나의 취미판단임을 밝힌다. 더욱이 만족으로부터 쾌적과 선에 속하는 모든 것을 분리한다고 의식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동의를 요구할 조건을 갖는 것이다.


9. 취미판단에 있어서 쾌의 감정이 대상의 판정에 선행하는가 아니면 대상의 판정이 쾌의 감정에 선행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탐구

  취미판단의 주관적 조건으로서 취미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하고, 또 대상에 관한 쾌감을 그 결과로서 반드시 초래해야 하는 것은 바로 주어진 표상에 의해 일어나는 심적 상태의 보편적 전달 가능성이다. 이는 인식과 인식에 속하는 한에서의 표상 외에는 없다. 오직 인식만이 객관적이며, 인식만이 모든 사람의 표상 능력이 합치되어야만 하는 하나의 보편적 관계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 규정 근거는 주어진 표상을 인식 일반에 관계시키는 한에서 표상 능력들의 상호 관계에서 나타나는 심적 상태이다.

  대상이 표상을 통해 주어지고 인식이 성립되려면, 표상에는 다양한 직관들을 결합하는 ‘상상력’과 그 다양한 표상들을 개념을 통해 통일하는 ‘지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식능력들이 자유롭게 유희하는 상태는 보편적으로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인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타당한 유일한 표상 방식이기 때문이다. 취미판단에서 표상 방식이 가지는 주관적인 보편적 전달가능성은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에서 나타나는 심적 상태와 같다.

  대상이나 표상에 대한 주관적인 (감성적) 판정은 그 대상에 대한 쾌감에 선행하며, 인식능력들의 조화에서 나타나는 쾌감의 근거(기초)이다. 즉 어떤 대상에 대해 쾌감을 느껴서 아름다움을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판정이 선행하고 쾌감을 동반하는 것이다. 만족의 보편적인 주관적 타당성은 보편성, 즉 전달가능성에 기초한다. 만약 판정보다 쾌감이 선행한다면 보편성을 주장할 수 없다.

  취미판단은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대상을 만족과 미라는 술어와 관련하여 규정한다. 인식 일반을 활성화하는 것은 감각으로서, 취미판단은 이 감각의 보편적 전달가능성을 요청한다. 미적판단은 상상력과 지성의 유희에서 성립하는 감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어떤 표상이 지성 일반의 보편성의 조건들과 합치된다면, 그러한 표상은 인식능력을 균형 잡히게 조화시켜주고, 모든 인간에 대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제2계기에서 도출되는 미에 대한 해명. 미란 개념 없이 보편적으로 만족을 주는 것이다.



(계속 이어질 것이다.)


※ 나는 나름 이해(?)한 내용을 옮겼으나,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요약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듯 함.



2014.09.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