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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철학&문학

칸트, 판단력비판 요약(취미판단의 제1계기)

by 라떼아범 2014. 9. 22.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3비판서-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판단려비판-중 제3비판이라 불리는 [판단력비판]을 읽고 요약한 것이다. 강독 강의 중 제출한 내용을 편집하여 옮겼다.)


※ 우선 [판단력비판]에 대한 설명은 다음 위키백과의 설명을 참조하기 바란다.

  ==> http://ko.wikipedia.org/wiki/판단력비판

※ 김상현 역(2005)를 중심으로 백종현 역(2009)과 영문판 Werner.S 역(1987)을 참조하였다.





▼ 초판 표지







제1절. 감성적 판단력의 분석학

제1장. 미의 분석론




취미판단의 제1계기: 성질의 범주에 따른 고찰


1. 취미판단은 감성적이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지 혹은 아름답지 않은지를 구별하고자 할 때, 우리는 그 표상을 인식하기 위해 ‘지성’을 통해 ‘객관’과 관련시키지는 것이 아니라, (지성과 결합되어 있는) 상상력을 통해 주관의 쾌-불쾌의 감정과 관련시킨다(즉, 상상력과 지성이 상호 유희하고 조화를 이룰 때 성립한다). 따라서 취미판단은 논리적 판단이 아니라, 감성적 판단이다. 취미판단은 인식판단이 아니므로 논리적이 아니라, 미감적/감성적이며,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주관은 자기가 표상에 의해 촉발되는 대로 스스로 느끼는 바이다. 판단에 있어서 조직 주관(주관의 감정)에만 관계한다면, 그런 한에서 그 표상은 언제나 감성적이다.

  (여기서 인식은 학적인 앎을 의미하는 반면, 표상은 우리의 정신 혹은 마음 앞에 세워진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인식판단에서는 표상이 지성에 의해 객관과 관계 맺어지나, 순수한 취미판단에서는 표상이 상상력에 의해 순전히 판단주관과 관계 맺어진다.)


2. 취미판단을 규정하는 만족은 일체의 관심과 무관하다.

  ‘관심’이란 어떤 대상의 현존의 표상과 결합되어 있는 만족을 이른다. 그러므로 관심과 결합되어 있는 만족은 언제나 욕구능력과 연관된다.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 하는 물음에서 중요한 것은 관조(직관 또는 반성)에서 그것을 어떻게 판정하는가이다. 조금의 이해관심이 섞여 있는 미에 대한 판단은 순수한 취미판단이 아니다. 취미판단을 위해서는 현존에 마음이 이끌려서는 안 되고, 이 점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무관심해야 한다.


3. 쾌적에 관한 만족은 관심과 결합되어 있다.

  쾌적이란 감각에 있어서 감관을 만족시켜주는 것을 말한다. 만족이란 모두 그 자체로 쾌의 감각이다. 내가 한 대상을 쾌적하다고 판정하면 내 안에 그 대상의 실존에 대한 욕구가 생겨난다. 감각이라는 말은 감관의 객관적 표상, 감정은 주관적인 정서적 반응을 말한다. 쾌적함을 준다고 판단한다면 그 대상에 대해 어떤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쾌적을 주는 것을 쾌락을 준다고 말한다. 쾌락은 경향성을 낳는다.


4. 선에 관한 만족은 관심과 결합되어 있다.

  선하다는 것은 이성을 매개로 단지 개념을 통해 만족을 주는 것을 말한다. 수단으로서만 만족을 주는 것을 무엇을 위하여 선하다(유용한 것)고 하고, 그 자체로 만족을 주는 것을 그 자체로 선하다고 부른다.  이 양자에는 언제나 목적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이는 이성과의 의욕의 관계, 즉 현존에 대한 만족이, 다시 말해 관심이 내포되어 있다.

  선하다는 것은 대상에 관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반면, 아름답다는 것은 특정한 개념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지만 만족을 준다. 아름다운 것에 관한 만족은 대상에 관한 반성에 좌우되며, 따라서 전적으로 감각에서 기인하는 쾌적과 구별된다. 

  선한 것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그것은 무엇보다도 목적의 개념을 통해 이성의 원리에 종속되어야 한다. 선의 경우에는 항상 단지 간접적 선인지 직접적 선인지가 문제이지만, 쾌적한 것의 경우에는 언제나 직접적으로 만족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쾌적한 것과 선한 것이 완전히 다름에도 양자는 대상에 대한 관심과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선은 의지의 대상, 즉 이성에 의해 규정되는 욕구능력의 객관이다. 선하다는 것은 그것이 우리 욕구의 목적이며 최고의 관심을 수반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의욕한다는 것과 그것의 현존재에 만족함을 갖는다는 것, 즉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같은 것이다.


5. 상이한 세 종류의 만족에 대한 비교

  쾌적과 선은 모두 욕구 능력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한에서 만족을 줄 수 있다. 쾌적한 것은 감각적으로 제약된 만족을 주며, 선한 것은 순수한 실천적 만족을 준다. 이러한 만족은 대상의 표상뿐 아니라, 주관이 대상의 현존과 결합되었다는 표상을 통해서도 규정된다. 그에 반해 취미판단은 단지 관조적(무관심)이다. 즉 대상이 현존 여부와 상관없이 대상의 성질을 오직 쾌-불쾌의 감정과 결부시켜 내리는 판단이다.취미판단은 인식판단이 아니므로, 개념에 근거한 것도 개념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쾌적한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은 표상이 쾌-불쾌의 감정과 맺는 세 가지 상이한 관계를 나타내며,  그에 따라 우리는 대상들을 또는 이 대상들을 표상하는 방식들을 구별한다. 쾌적한 것은 즐거움을 주는 것을 말하고, 좋은 것은 존중되고 인정되는 것, 즉 객관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쾌적함은 동물과 인간, 미는 오직 인간에게만, 선은 모든 이성적 존재자 일반에 적용된다. 만족 중에서 미에 관한 취미의 만족만이 유일하게 무관심한 자유로운 만족이다. 세 가지 경우의 만족을 각각 경향성, 호의, 존경과 관계된다고 본다. 호의야말로 유일하게 자유로운 만족이기 때문이다. 모든 관심은 결핍을 전제하거나 결핍을 야기하기 때문에 관심과 관련되면 미에 대한 정당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도덕적 사고방식과 처신에 대한 취미를 보인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도덕적 사고방식은 명령을 포함하고 있으며 필요를 유발하지만, 윤리적 취미는 만족의 대상들과 더불어 유희할 뿐 대상에 집착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제1계기에서 도출되는 미에 대한 해명. 취미란 대상이나 표상방식을 일체의 관심 없이 만족 또는 불만족을 통해 판정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러한 만족의 대상을 아름답다고 일컫는다.





(계속 이어질 것이다.)


※ 나는 나름 이해(?)한 내용을 옮겼으나,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요약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듯 함.



2014.09.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