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한나 아렌트는 20세기 최고의 정치 사상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사상은 판단이론으로 수렴되는데, 매우 재밌게도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많은 부분 의지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 위키백과 : http://ko.wikipedia.org/wiki/한나_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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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칸트의 정치철학강의]
제1~4강
첫 번째 강의
칸트의 역사 개념이 비록 그 자체로서 아주 중요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의 철학의 핵심이 있지 않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종으로서의 인간으로 하여금 세대들의 연속을 통해 진보하게 하고, 그의 모든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원인으로서의 자연의 숨을 책략이다. 종의 역사는 “자연이 그 안에 심은 모든 씨앗들이 완전히 성장하고, 또 인류의 운명이 이곳 지상에서 성취되는” 진보를 의미한다. 이것이 소년기와 청년기, 성년기를 지나는 개인의 유기체적 발전과정에 유비해서 본 “세계역사”이다. 칸트의 흥미를 끈 것은 과거사아 아니라, 종으로서의 인간의 미래였다. 인간이 낙원에서 나오게 된 것은 자연에 의해서이다. 이것이 역사의 시작이다. 역사의 과정은 진보이며, 그 과정의 산물은 때로는 문화, 때로는 자유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칸트는 이것이 “인간에게 의도된 최고의 목적, 즉 사교성을 산출하는 문제라고 진술한다. 진보는 칸트에게는 오히려 우울한 개념이다.
칸트는 사회적인 것과 구별되는 정치적인 것을 세계에 속한 인간의 한 조건이자 멍에로서 의식하였고, 제3비판 즉 <판단력 비판>이 바로 그에 대한 저작이다. ‘취미’라는 주제의 배후에서 칸트는 전적으로 인간의 새로운 기능, 즉 판단력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 새로운 기능의 능력으로부터 도덕명제를 배제했다. 미와 추에 관한 결정은 취미 이상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는 취미나 판단력이 아니라 이성으로만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두 번째 강의
인생 말년에 칸트는 두 가지 질문을 남겨 놓았다. 첫째는 인간의 “사교성(sociability)이다. 이는 최고의 기능인 인간정신도 인간사회를 떠나서는 기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사유자(thinker)에게 동반자는 필수불가결하다.” <비판>은 미에 대한 것과 숭고에 대한 것으로 구분된다. 초기 저술에서 “사교성”, 즉 동반자의 문제는 이미 핵심문제가 되어 있었다.
두번째 질문은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도대체 왜 필요한가?이다. 칸트의 대답이 유명한 세가지 질문인 “내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칸트는 네 번째 것을 추가했는데, “인간이란 무엇인가?”이다. 그는 이 질문들은 모두 ‘인간학’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했다. 이 질문(네번째)은 라이프니츠, 셸링, 하이데거의 질문, “왜 아무 것도 없지 않고, 존재자가 존재하는가?”와 연결된다. 그 질문은 일어난 모든 일이 무슨 목적을 위해 일어난 것인가를 묻기 위한 것이다. 이 목적이란 “본질(nature)의 현존 문제처럼, 자연(nature)을 넘어서서 추구되어져야 하는 목적”이며, 생을 넘어선 생의 목적, 우주를 넘어선 우주의 목적을 의미한다. 이 목적은 다른 모든 목적과 마찬가지로 자연이나 생명 또는 우주보다 더 고차적인 어떤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자연의 목적이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하는 까닭은 단지 우리 자신이 끊임없이 목적과 목표를 설계하는 목적적 존재이며 또 그러한 지향적 존재로서 자연에 속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본질 상 시작하는 자들이기에 우리 일생에 걸쳐서 새로운 시작들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대답할 수 있다.
<판단력 비판>에서 이 책의 두 부분을 연결하는 연결점은 약하지만 다른 <비판>의 어떤 부분보다도 정치적인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 같다. 이 연결점에 대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두 부분 어디서도 칸트가 인간을 지성적 또는 인지적 존재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 진리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천이성 비판>과 <판단력 비판>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전자에서 설명되는 도덕규칙은 모든 지성적 존재에게 타당한 반면에, 후자에서의 교칙들은 지상에 사는 인간에게만 그 타당성이 엄격히 제한된다는 것이다. 통상 사유가 다루게 되는 “보편자에 견주어 볼 때 우연적인 것을 내포한” 특수자를 담당하는 것은 판단력이다.
<판단력 비판>의 주제들-인간정신의 기능을 위해서 인간은 다른 동료 인간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통찰-다시 말해 하나 하나가 모두 탁월한 정치적 중요성을 갖는 이러한 주제들-즉 정치적인 것에 대해 중요한 주제들-은 오래 전부터 칸트가 가지고 있었던 관심사들이었다. 칸트의 이론적 부분은 “자연과 도덕의 형이상학”을 포함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여기에는 “판단의 기능을 위한 어떠한 특별한 항목도” 자리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수자에 대한 판단의 자리가 칸트의 도덕철학에는 없기 때문이다. 실천이성은 “추론을 하며”, 의무와 금기를 알려주지만, 판단력은 단순한 관조적 쾌락 또는 비활동적인 즐거움에서 발생한다.
칸트가 이론적인 작업을 착수했을 때 특수자와 우연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과거의 관심사였고 또 다소 주변적 관심사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프랑스혁명에 대한 그의 최후의 입장이 이러한 단순한 관찰자의 태도에 의해 결정되어졌다는 것이다. 관찰자의 임장이란 “ 게임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으며” 단지 “간절한 염원을 가진 열정적인 참여자”로서만 그 게임을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적어도 칸트에게는, 이러한 사람들이 당시에 결코 혁명을 일으키기 원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공감은 단지 “관조적 기쁨과 비활동적 기쁨”에서만 일어난 것이라는 것이다.
칸트가 헌법적이고 제도적인 질문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말년에는 이러한 관심이 현저하게 드러난다. 만년의 그를 끊임없이 지배했던 것은 바로 어떻게 민족을 국가(a state)로 조직화하는가, 어떻게 국가를 구조화하는가, 어떻게 공화국(a commonwealth)의 기초를 놓을 것인가 등과 같은 문제들과 이와 연관된 모든 법적 문제들이다.
세 번째 강의
말년에 칸트가 가졌던 문제는 어떻게 국가조직의 문제를 도덕철학, 즉 실천이성의 명령과 화해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아니라도 좋은 시민이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문제삼고, “좋은 헌법이 도덕성에서 도출된다고 기대할 수 없고, 반대로 한 민족의 좋은 도덕적 조건은 좋은 헌법 하에서 기대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였다. 칸트는 좋은 시민성으로부터 도덕성을 분리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를 능가한다(악마의 종족 유비). 칸트는 나쁜 사람도 좋은 국가에서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칸트에 따르면, 나쁜 사람이란 스스로 예외가 되려는 사람이다. “악마의 종족”이란 “비밀리에secretly 예외가 되려는 성향을 가진” 이들이다. 도덕과 달리, 정치에서는 모든 것이 “공적 행위”에 의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아를 자기의 노력에 대한 유일한 준거로서 자기 눈 앞에 고정시켜 놓는다. 그래서 자기이해를 큰 축처럼 모든 것의 중심에 놓고 운영하려고 한다. 이것보다 더 이로운 것은 없을 것이기에 사람들은 가장 부지런하며, 질서 있고 신중하게 된다. 그들은 그럴 의도도 없이 공공의 선에 기여하는 가운데 전체를 옹호하게 되고 연대를 구축하게 된다.
정치철학에 관한 한 칸트의 주된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행위하는 사람들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위대한 목적”을 가정하는 한에서만 이 도식이 작용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둘째 보다 나은 정치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인간의 어떠한 도덕적 전환이나 심성의 혁명도 필수적이거나 요구되거나 또는 희망되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 셋째 한편으로는 헌법에 대한,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성에 대한 강조가 존재한다. 이 맥락에서는 악한 사고들이 정의상 비밀스럽다는 그의 확신을 가리킨다.
칸트는 인간의 기본적 “사교성”에 대해 주의 깊게 설명하면서, 그것의 요소로서 인간이 소통해야 할 필요성을 의미하는 소통가능성과 단지 생각할 뿐만 아니라 출판할 수 있는 공적 자유-“펜의 자유”-를 의미하는 공공성(publicity)을 열거하였다.
철학자들이 정치영역에 갖는 태도는 다음과 같다. 플라톤은 철인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 이유는 첫째로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 의해 통치받지 않고, 철인들의 삶을 위해 명백한 최고 조건인 완전한 정적(complete quite), 즉 절대적 평화가 국가에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적 삶이 관조적 삶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스피노자는 정치적 저술의 궁극목표가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철학적 자유’라고 명시했다. 철학자는 정치적 삶보다 철학적 삶을 추구한다. 가장 철학적이란 단순하게 그리고 조용히 사는 것이었다.
네 번째 강의
칸트가 정치와 어떤 관계를 가졌는가를 고찰한다면, 몇 가지 일치점과 차이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일치점은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에 있다. 그리스 철학과 그 이후를 살펴보면 죽음에 대한 선호가 플라톤 이후 철학자들에게 일반적인 주제가 되었다. 삶에 대한 회의가 인간사의 모든 영역에 대한 평가절하, 즉 “그의 우울한 우연성”(칸트)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칸트가 다른 철학자들과 다르게 강조하는 바는 불멸이 아니라 더 나은 삶에 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칸트는 철학자들과 일반적인 삶에 대한 평가만큼은 공유했다는 것이다.
칸트의 독특한 두 가지 사유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는 계몽주의 시대의 진보개념에 담긴 생각이다. 진보는 종의 진보이며, 따라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체 역사와 인류 전체에서의 진보에 대한 생각은 개별자에 대한 무시와, 이 개별자가 그 속에서 의미있게 되는 “보편자”에 대한 주목을 포함한다. 그런데 칸트는 전쟁, 파국, 그리고 순전한 악이나 고통 등이 “문화”의 산출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둘째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도덕적 품위에 대한 생각이다. 도덕적 존재(moral being)로서의 인간에 대하여는 왜 인간은 존재하는가라고 더 이상 물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목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사를 고찰할 수 있는 세 가지 서로 다른 개념들 또는 관점을 갖게 된다. 첫째는 인류(human being)와 그 진보에 관한 관점이다. 다음으로 도덕적 존재이며 그 자체로서 목적인 인간(man)이 있다. 그리고 복수의 인간(men)이 있다. 이 중 복수의 인간이 아렌트가 가장 주목하는 개념이며, 이 연구의 목표는 앞서 언급한 사교성이다.
<생각>
아렌트의 정치철학에 대해서는 학부 재학 시절 조그만 해설서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많은 내용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렌트가 전체주의에 대해 반대하였다는 것과 정치의 영역에 있어서 진리의 추구에 대해 부정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문과 1~4강을 읽어본 바로는, 그는 정치적 판단에 있어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는 복수적 인간(Men) 개념을 주목하고 있다. 이 복수적 인간은 [판단력 비판]에서 취미판단을 하는 주체로서의 인간과 유비된다. 각각의 취미판단은 대상이 갖는 개념이나 논리를 따르지 않고 주관적 합목적성을 가질 뿐이다. 따라서 취미판단은 다른 사람도 판단자와 똑같은 판단을 할 것이라는 ‘보편적 전달가능성’을 갖는다. 취미판단에선 개인들의 공통감(sensus communis)이 전제된다. 정치적 판단에서도 마찬가지로 복수적 인간은 공통감과 공동체 감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사유를 위해서 다른 사람의 동반을 필요로 한다.
아렌트는 많은 부분 칸트에 기대 논의를 전개한다. 그는 많은 철학자들이 정치를 터부시했던 것에 비해 칸트가 말년에 좋은 시민성을 도덕철학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칸트가 ‘공공성(publicity)’ 개념을 통해 정치영역에서의 소통의 중요성 뿐 아니라, 출판할 수 있는 자유를 강조함으로써 놀라운 통찰-일찌기 현대적인 민주주의의 주요 가치와 같은-을 제시했다고 해석하였다. 특히 칸트가 제시한 ‘악마의 종족’ 유비는 공공성의 위력(?)을 보여주는 놀라운 예시였다.
[판단력 비판]을 읽으며 대상에 포함되어 있는 미의 개념이 아니라, 개인의 미적판단을 강조한 칸트의 통찰이 놀라웠는데, 여기서 정치적 판단에 대한 또다른 통찰을 도출해낸 아렌트의 사유 역시 매우 놀랍다. 이 책을 통해 정치에서 공공성과 개방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우리 통치자도 “비밀리에secretly 예외가 되려는 성향"을 버리기 바란다.
2014.1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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