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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철학&문학

논리적인 것과 사실적인 것, 이론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1)

by 라떼아범 2015. 1. 24.
(이 글은 이홍우 선생의 [교육의 목적과 난점] 6판 부록에 실린 <논리적인 것과 사실적인 것, 이론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을 요약한 것이다. 저자는 이 네 가지의 용어가 본문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골격(또는 형식)'에 해당한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을 사람이 아니더라도 연구(특히 실천학으로서의 교육학)에 임하는 자라면 누구나 음미해볼만한 내용이라고 보아 이곳에 옮긴다.)



첫째. 논리적인 것과 사실적인 것, 관련과 차이에 관하여.


1.
     논리적인 것과 사실적인 것은 각각 영어의 the logical과 the empirical의 번역어이다.

2.
     논리적인 것과 사실적인 것은 ‘관련’과 ‘차이’ 각각의 두 가지 상이한 방식을 지칭한다. 먼저 ‘관련’의 경우에 두 용어가 어떤 상이하 방식을 나타내는지 보자. 가령 '서울대(U)에서 서울역(S)까지 잘 가는 사람은 서울역(S)에서 서울대(U)까지 잘 오는가’라는 질문은 U에서 S까지 잘 가는 것과 S에서 U까지 잘 오는 것이라는 두 항 사이의 <관련>을 문제삼고 있다. 이는 ‘p: X는 U에서 S까지 잘 간다’, ‘q: X는 S에서 U까지 잘 간다’와 같은 두 명제로 나타낼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하여 감과 을이라는 두 사람이 각각 상이한 대답을 한다고 생각하자. 갑은 잘 가는 사람이 잘 온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반면, 을은 잘 가는 사람이 잘 온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p와 q 사이의 관련을 상이한 방식으로 파악하고 있다. 갑의 말에서 후자(q)는 전자℗에 ‘논리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한 쪽으로 잘 가고 반대쪽으로 잘 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모종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제대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하다. 을의 말에서는 p와 q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양자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양자 사이의 관련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성립하는 관련이다. 앞의 <논리적 관련>이 '논리적 분석(logical analysis)'에 의하여 확인되는 것과 달리, 뒤의 <사실적 관련>은 '사실적 검증(empirical verification)'에 의하여 그 성립 여부가 결정된다.
     말하자면 <논리적 관련>은 술어의 의미가 주어의 의미의 한 부분으로 포함되어 잇는 그런 관련이며, <사실적 관련>은 ‘사실적 조사와 관찰’에 의하여 그 성립 여부가 결정되는 관련이다. 논리적 관련을 나타내는 문장과 사실적 관련을 나타내는 문장은 그 형식에 있어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p는 q이다). 이 중 논리적 관련은 ‘처녀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이다’에서와 같이 때로 ‘개념적(conceptual) 관련’과 섞바귀어 사용된다. 수학적 명제는 일체가 논리적 관련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기체의 부피는 온도에 비례하고 압력에 반비례한다’는 것과 같은 과학적 법칙은 일체가 사실적 관련을 나타탠다.
     ‘논리적’, ‘사실적’은 ‘질문’, ‘문장’, ‘명제’ 등의 단어와도 결합된다. 논리적 문장과 사실적 문장이 그 형식에 있어서는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하나의 문장이나 질문이 둘 중 어느 것에 속하는가를 분명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3.
     <논리적 관련>은 ‘자명한’-증거가 그 자체 속에 들어 있는-관련이다. 사실적 조사는 두 항 사이에 논리적 관련이 없다는 것이 명백히 밠혀진 뒤에, 그것만큼 자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종의 관련이 없는가를 알고 싶을 경우에 필요하다. 이것으로 보면 두 가지 관련 중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논리적 관련>이며, 여기에 비하여 <사실적 관련>은 부차적, 파생적인 관련이다.
     <논리적 관련> 이외의 관련은 모두가 사실적 관련이다. 논리적 관련은 그 <종류>에 있어 다음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이다.
     (1) ‘X는 이화여대 학생이다’(XE)에서 자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X는 여자라는 것’(XW)이다. 이는 앞의 말(XE)을 긍정하고 뒤의 말(XW)을 부정하면 모순이라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명제 p, q가 있어서, p를 긍정하고 q를 부정하면 모순이 될 때, ‘p는 q를 함의한다’(p implies q), 또는 ‘q는 p의 함의이다’(q is an implication of p)라고 말하고, p와 q이 관계를 <함의>라고 부른다. 이를 기호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함의는 논리적 관련의 기본적인 형태이며, 나머지 두 종류는 그것에서 파생된 것이다.
p—imp—>q = ~(p · —q) : ~는 모순, —는 부정.
     (2) ‘이씨의 아들은 천재이다’(LSG)에서 자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씨에게 아들이 있다’(LHS)이다. 이 경우 LSG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LHS를 부정하면 모순이 된다. 두 명제 p, q가 있어서, p를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간에 q를 부정하면 모순이 될 대 ‘p는 q를 논리적으로 가정한다’(p presupposes q), 또는 ‘q는 p의 논리적 가정이다’(q is a presupposition of p)라고 한다. 이 경우 p와 q 사이의 관계를 <논리적 가정>이라고 부른다.
     p—prs—>q = [~(p · —q)] [~(—p·—q)]
     <논리적 가정>은 <함의>에 ‘p를 부정하고 q를 부정하면 모순이 된다’는 조건 하나가 덧붙여진 것이다. <함의>의 경우에는 앞의 명제(p)를 긍정하고난 뒤에 명제(q)를 부정하는 것이 모순이 된다. 그러나 <논리적 가정>의 경우에,  앞의 명제를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간에 뒤의 명제를 부정하는 것이 모순이 된다는 것은 뒤의 명제(q)가 앞의 명제(p)에 앞선다는 것, 즉 앞의 명제가 성립하려면 뒤의 명제를 옳은 것으로 우선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뒤의 명제는 앞의 명제가 의미를 가지는 데에 필요한 <전제>이며, 이 경우의 모순은 그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앞의 명제를 말하는 잘못을 가리킨다. 논리적 가정(q)은 원래의 명제(p)에서 논리적으로 추론되어 나온다.
     <논리적 가정>은 한 명제가 의미를 가지기 위한 조건으로서 당사자의 심리 상태와는 무관하게 그 ‘이전에’ 받아들여야 하는 명제를 가리키는 만큼, 그것은 <논리적 선행(logical priority>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3) ‘고양이는 방석 위에 있다’(COM)라는 명제와 ‘방석은 고양이 밑에 있다’(MUG)라는 명제의 관계는 위의 어느 것과도 같지 않다.이 경우에는 함의가 양쪽으로 성립한다. 두 명제 p, q가 있어서, p를 긍정하고 q를 부정하더라도 모순이요, q를 긍정하고 p를 부정하더라도 모순이 될 때 ‘p는 q를 함의하며 그 역도 성립한다’(p entails q), 또는 ‘q는 p의 함의이며 그 역도 성립한다’(q is an entailment of p)라고 말하고 p와 q의 관계를 <상호함의>라고 부른다.
p—ent—>q = [~(p · —q)] [~(q · —p)]
     수학의 등식은 <상호함의>의 가장 명백한 경우이다. <상호함의>는 논리적 관련이 가장 밀접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그 형식상으로는 <함의>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이외의 관련은 모두 <사실적 관련>에 속한다.

4.
     관련이 아닌 <차이>의 두 가지 방식으로서의 <논리적>, <사실적>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설명해보겠다. <관련>과 <차이>라는 용어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방향을 나타낸다. <관련>이라는 것은 서로 가깝게 붙어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반면, <차이>라는 것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1) <관련>의 원형은 <논리적 관련>이다. 두 항 A, B 사이에 논리적 관련이 없는데도 모종의 관련이 성립할 때 그 관련을 ‘사실적 관련’이라고 한다.
     (2) <차이>의 원형은 <사실적 분리>이다. 두 항 A, B가 사실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데도 모종의 차이가 있을 때 그 차이를 ‘논리적 구분’이라고 한다.
     두 가지가 ‘다르다’든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나타내는 경우는 시공간적으로 별도의 위치일 때이다. 이것을 <사실적 분리(seperation)>라고 한다. 사실적으로 분리되지 않는 경우에도 ‘차이가 있다’는 말이 적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논리적 구분 또는 개념적 구분(logical or conceptual distinction)>이라고 부른다. <사실적 분리>와 <논리적 구분>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가 아닌 종류의 차이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로, 사실적 분리가 차이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경우라는 이유에서, 일체의 차이를 그것으로 환원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두 가지 <관련> 방식과 <차이> 방식 사이의 대응 관계를 보자. <관련>의 경우 <논리적 관련>이 확인되면 그것 이외의 <사실적 관련> 유무를 확인하려는 누력이 불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차이의 경우에도 <사실적 분리>가 확인되면 그것 이외의 논리적 구분을 알아내려고 하는 일은 불필요하다. 이 점은 <논리적 관련>과 <사실적 분리>가 각각 관련과 차이의 원초적 형태라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따라 나온다.
     <논리적 또는 개념적 구분>이 어떤 것인지 보자. 개인과 사회는 분명히 다르지만, 두 가지 방식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는 따져보야 할 문제이다. 사실적 분리에 해당한다면 사회라는 것이 전혀 섞이지 않은 개인만을 따로 떼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불가능하다. 사회를 떠난 개인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과 사회는 사실적으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구체적인’ 인간, 즉 사회의 영향 하에 있는 개인으로부터 ‘개념적으로 구분’해 낼 ‘생각’ 또는 ‘개념’에 불과하다. 철학적으로 관심있는 <차이>는 사실적 분리가 아닌 <개념적 구분>에 있다.
     <추상>이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인 것’ 즉 ‘구체적인 것’ 모두를(또는 모두에서) 뽑아내되 그 ‘구체적인 것’과 동일하지 않은 형태로 뽑아낼 때, 그리하여 그 뽑혀 나온 것에 ‘구체적인 것’모두가, 비록 구체적인 것 그대로능 아니지만, 고스란히 들어 있을 때, 이 경우의 ‘뽑아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추상(동사형)은 사례의 한 ‘부분’이 아닌 ‘전체’를 드러낸다. 추상(명사형)은 추상 그 자체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의 오류>는 추상(명사형)이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오류 또는 ‘실체화(hypsistatization)의 오류’를 가리킨다.


2015.01.24.(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