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홍우 선생의 [교육의 목적과 난점] 6판 부록에 실린 <논리적인 것과 사실적인 것, 이론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을 요약한 것이다. 저자는 이 네 가지의 용어가 본문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골격(또는 형식)'에 해당한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을 사람이 아니더라도 연구(특히 실천학으로서의 교육학)에 임하는 자라면 누구나 음미해볼만한 내용이라고 보아 이곳에 옮긴다.)
▲ 종심소욕 불유구: 공자 [논어]에 나오는 구절.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는 뜻.
(이미지출처: http://bookdramang.com/94)
둘째. 관련과 차이가 인간 행위를 설명하는 상이한 방식에 관하여.
5.
<관련>과 <차이>를 가로질러서 그것들이 인간 행위를 설명하는 상이한 방식을 이해하는 데에 어떤 빛을 던져 주는지 생각해보자. 인간 행위를 설명한다는 것은 ‘X는 어째서 이런이런 <행동(B)>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는 것을 가리키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설명(E)>이라고 부른다. 행동을 설명하는 데에는 <원인(cause)>, <동기(motive)>, <이유(reason)>라는 세 가지 개념이 사용된다. 여기서 얻어지는 설명의 세 가지 양태를 <인과적 설명(causal pattern)>, <도구적 설명(instrumental pattern)>, <논리적 설명(constitutive pattern)>이라고 부른다. 다음 표를 참고하라.
<행동과 설명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과적 설명>은 사실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두 가지(<행동>과 <원인>) 사이에 사실적 관련이 성립한다든 것을 보이는 것이다. <인과적 설명>은 인간 행위를 자연 현상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 둘째, <도구적 설명>은 수단-목적 관계에 의한 설명을 가리킨다(이 것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셋째 <논리적 설명>은 논리적 관련의 세 가지 종류—그 중에서도 특히 함의와 논리적 가정—에 의한 설명을 가리킨다.
시묘 살이를 하는 <행동>(X는 시묘살이를 한다)과 그 <이유>(부모에 대한 보은은 자식의 도리이다)는, 적어도 ‘논리적 분석’의 결과로 양자 사이의 ‘논리적 관련’이 확인되기 전에는, 논리적으로 또는 개념적으로 구분된다. 그 <행동>에 대하여 <이유>를 댄다는 것은 그 행동에 함의와 논리적 가정으로 붙박혀 있는 명제(즉, 신념)를 찾아가 양자가 그런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을 뜻한다. <행동>과 논리적으로 관련된 <이유>는 행동의 <의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의미란 심리적 의미가 아닌, 논리적 의미를 뜻한다).
행동과 이유 사이의 관련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점을 더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이유는 행동 그 자체로부터 ‘논리적으로’ 분석되어 나오는 것인 만큼 그것은 행동을 하는 당사자에게 반드시 의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 둘째로, 이유는 행동의 함의와 논리적 가정에 해당하는 신념인 만큼 그것은 행동에 대하여 그 자체로서 ‘충분한’설명이 된다. 충분한 설명이란 논리적 강제력이 있는 설명을 뜻한다.
<도구적 설명>은 <수단-목적>관계에 의한 설명을 가리킨다. 개념적 구분과 사실적 관련의 조합은 바로 수단-목적 관계를 규정한다. ‘개념적으로 구분되는 것 사이의 사실적 관련’이라는 규정은 수단-목적 관계의 엄밀한 규정이다. 예컨대 'X는 공부를 위한 수단으로 책을 읽는다’라는 문장은 어색하다. 그 이유는, ‘책을 읽는 것’은 ‘공부를 하는 것’과 의미상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 경우에는 수단과 목적이 정상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반면 ‘X는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고기잡이를 한다’는 의미상 별개인 것들 사이에 수단-목적의 사실적 관련이 성립한다.
설명의 세 가지 양태 중에서 마지막 두 가지의 핵심 개념인 <동기>와 <이유> 사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로, 앞서 고기잡이에 대한 설명으로서의 ‘생계유지’라는 동기는 ‘필요한’ 설명에 불과하다. 이는 논리적 강제력이 없이 ‘심리적 만족을 주는’ 설명이라는 뜻이다. 수단-목적 관계가 사실적 관련이라는 것은 그 사이에 논리적 관련이 없다는 뜻이며, 따라서 수단과는 별도로 목적을 설정할 수 있다. 수단은 목적에 대하여 중립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이것은 동일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 여러 가지 있다는 뜻이다.
둘째로, <논리적 설명>에서의 이유가 행동을 하는 당사자에게 반드시 의식될 필요가 없는 것은 그것이 개인의 심리상태를 초월하는 사회적 제도에 의하여 주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하여 <도구적 설명>에서의 <동기>는 원칙상 그 당사자에게 의식된다. 이 점에서 동기는 행동의 ‘심리적 의미’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당사자에게 ‘심리적’으로 의식된다는 것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 행동을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실현하고자 하는 의도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도구적 설명>의 이 <특징>은 설명의 세 가지 양태와 관련하여 <자유(freedom)>와 <필연(necessity)>의 문제라는 심각하고도 복잡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상 설명의 세 가지 양태는 행위를 ‘사후적으로’ 설명하는 상이한 방식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사후적 설명은 그대로 행위의 ‘사전적’ 지침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인과적 설명>에 의해 설명되는 행위는 인과적 법칙이 나타내는 것과 같은 ‘필연(자연적 필연)’에 지배된다. 거기에는 개인의 자유라고 할 만한 것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이점에서 보면 <논리적 설명>은 인과적 설명과 완전히 동일하다. <논리적 설명>은 행위를 사회적 규칙이나 관례와의 관련에서 설명하는 이 경우에도 우리의 행위는 ‘필연(도덕적 필연)’에 지배된다. (서양 철학에서 ‘자유와 필연’의 문제가 때로 ‘자연과 자연’의 문제로 바꾸어 표현되는 것은 납득할 만하다.) <도구적 설명>은 위 두 경우와 정면으로 대조된다. 수단-목적 관계는 개인의 의식적인 동기나 의도에 의한 선택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개이는 자연적, 도덕적 필연이 아닌 자유를 따르는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설명의 세 가지 양태와 관련지어 볼 때 자유와 필연의 문제는 동기와 이유의 불일치 문제로 바꾸어 규정될 수 있다.
칸트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정립된 바와 같이, 이른바 <자유와 필연의 이율배반'(antinomy)>은 서양 윤리학의 근본 문제로 간주되어 왔다. 칸트가 말한 <자유와 필연의 이율배반>이라는 것은 자유가 인과적 법칙과 동일한 평면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할 때에 빚어지는 양자 사이의 불일치를 가리킨다. 그 불일치 또는 이율배반은 <자유>를 인과적 필연과 동일한 수준이 아닌 <선험적> 수준에 있는 <관념>으로 파악할 때 해소될 수 있다. 그 이율배반이 해소된 상태에서 자유는 그 자체가, 비록 인과적, 자연적 필연은 아니지만, 모종의 필연(즉, ‘도덕적 필연’ 또는 도덕적 의무를 선택하는 필연)을 띠게 된다. 그리고 이 상태는 <동기>와 <이유>가 일치된 상태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칸트에 의하면 ‘도덕 형이상학’이 해결해야 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유와 필연의 이율배반>이 해소되는 것, 또는 <동기와 이유가 일치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격률'(maxim)>과 <보편적 도덕 법칙’(universal moral law)>의 일치를 골자로 하는 칸트의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은 바로 <자유>와 <필연>, 또는 <동기>와 <이유>가 일치된 상태를 처방의 형태로 바구어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칸트가 말하는 <격률>은 <동기>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주관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행위의 원리이며, <보편적 도덕 법칙>은 <이유>와 마찬가지로 개인이 따라야 하는 행위의 원리이다. 정언 명령은, <이유>를 따르는 행위가 바로 <동기>를 따르는 행위와 동일하게 자유로운 선택이 되도록 하라는 명령, 또는 행동의 <논리적 의미>가 곧 <심리적 의미>로 되도록 하라는 명령이 된다. 칸트는 이 명령이 실현된 상태를 <자율(autonomy)>이라고 불렀다. 이를 설명 양태의 용어로 표현하면,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가 어떻게 자연 현상이 나타내는 거소가 같은 인과적 필연에 의하여 보편적 도덕 법칙에 부합되도록 할 수 있는가/라는 것으로 진술될 수 있다.
[교육의 목적]을 가장 일반적인 수준에서 규정하자면, (칸트가 말한 그런 의미에서의) <자율적 인간>—그의 자유로운 행위가 인과적 필연에 의하여 보편적 도덕 법칙에 부합하는 인간, 또는 70세의 공자와 같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그런 인간—을 길러내는 데 있다.
(다음 편에는 '이론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의 구별에 관하여 적을 것이다.)
2015.01.2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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