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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작품

[영화] 본질을 비껴가는 반통찰 즉흥평론: 덩케르크(Dinkirk)

by 라떼아범 2017. 7. 25.

덩케르크 감상평

(어제 저녁 때 보고, 출근 후 시간이 좀 남아 적어봄. 스포 있는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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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담담함.

일단 담담해서 좋다. 함께 본 사람들은 기대했던 큰 거 한방이 없어 아쉬웠다고 하던데, 난 감정을 끓어올리는 영화는 질색이다. 예의 전쟁영화에서 인물과 상황을 지나치게 감동적으로 흥분되게 묘사한다. 전장을 그저 비참하고 처절한 비극으로 간주하는 나에겐 잘 맞지 않는 방식이다. 그런 면에선 시종일관 도망 다니며 용케 살아남는 나약한 존재로 그려지는 주인공(토미 이병)의 모습이 전장의 실상과는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의 담담함은 여러 장면에서 드러나는데 기억나는 두 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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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스톤(Moonstone)호를 이끌고 기꺼이 전장으로 향한 아버지와 아들.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괜히 따라 나섰다 목숨을 잃은 아들의 친구도. 이 구도만 봐도 먼가 사연이 있을 법도 한데 아무 설명이 없다. 그나마 영화 중반에 원래 있던 첫째 아들이 공군으로 참전했다 전사했다는 게 전부다. 그리고 카메라는 여전히 열일 중인 아버지의 뒷모습을 담담히 잡는다. 굳이 애써서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 않고, 숭고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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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가 바닥나 영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팔리어가 기뢰제거함을 향해 돌진하는 폭격기를 보고 차마 기선을 틀지 못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였다.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서로 맞바꿔야 하는 상황. 실존적 문제에 처한 인물을 다루는 방식에서 누군들 멋지게 뽑고 싶지 않았을까. 어깨에 뽕 넣는 것과 빼는 것 중에 무엇이 어렵겠는가. 팔리어는 그저 적기를 향할 뿐이다. 더 놀라운 건 그의 기획은 실패했다는 것. 그렇게 죽기를 각오했으면 소기의 목적(기뢰제거함 구출)은 이뤘어야 했는데, 배는 결국 침몰하고 엔진이 꺼진 스핏파이어는 적군이 우글대는 해변에 간신히 착륙한다. 아 인정 없는 놀란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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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된 병사가 굳이 해안 절벽을 보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가끔 개인적으로 엄청 힘든 일이 있을 때, 특히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내가 함께 공감해야 할 때, 그 때마저도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른다. 그럼 괜히 내가 한심해보이기도 하고, 그 모습을 들키지 않을까 부끄럽기도 하다. 참혹한 전장의 사선에서도 절경을 포기하지 못하는 그의 말을 살아남은 자의 환희나 여유로 보아야 할지, 그 순간에도 저버리지 못하는 욕망으로 보아야 할지.. 그 말에 당황하던 아들(문스톤호)의 눈빛이 감독의 대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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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이지 않는 적의 공포

본래 공포(fear)란 보이지 않는(알 수 없는) 대상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어디서 쏘는지도 모르는 총알에 맞아 쓰러지고,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적군의 포화에 의해 나자빠지는 전우를 보며 느끼는 공포만큼 아픈 게 있을까. 영화에서 독일군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데, 가능했다면 독일군의 전투기와 폭격기도 가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괜한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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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미스트>라는 영화는 괴물의 정체를 안개 속에 끝끝내 감춤으로써 관객의 공포감을 극대화시켰다. 마지막 장면은 너무도 충격적인데, 보이지 않는 적 때문에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만 주인공의 절규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주인공이나 다른 등장인물의 시점을 통해 표현됐을 때 효과가 커지는 것 같다. 덩케르크는 다양한 인물의 시점을 바꿔가며 공포감을 드러내고, 심상지 않은 배경음악과 더불어 그 효과는 최대치가 되었다. 예상한대로 한스 짐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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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은 다른 이유에서도 마음에 든다. 사실상 히틀러를 비롯한 수뇌부가 문제지 독일군 하나하나는 이 영국군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대부분 전쟁영화는 적군을 절대악, 괴수 따위로 그리는 공식을 따른다. 철저히 퇴치해야 할 대상이니 죽어도 그만인 존재다. 물론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다. 거의 20년이나 된 <씬레드라인>에서 터랜스 말릭 감독은 헤픈 감상주의를 피해 전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어 인상적이었다. 10년 전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라는 다른 시점의 이란성쌍둥이영화를 통해 전장에서 마주선 자들의 고뇌와 역설을 드러내기도 했다. 독일군이 등장했다면, 영국군의 공격에 희생되는 병사의 얼굴을 봤다면 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냥 안 나타나고 공포스런 존재로 남는 게 훨씬 나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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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단은 #1에 썼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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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표주의(내맘대로 지어낸 이름ㅋ)

영화에서는 일종의 '대표주의'가 작동한다. 대단위 부대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고, 대신 육해공 각 군을 대표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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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표는 토미 이병이다. 열심히 살길을 찾아 고군분투한다. 그의 동료들(사실 동료 맞는지 모르겠다. 토미는 그냥 외톨이)은 나약한 만큼 추악함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영화 중반에 한 병사는 "생존은 불평등하다. 생존은 공포이자 탐욕이다."라고 외치며 한 병사를 죽음으로 내몰려 한다. 전쟁이 원래 그렇지 않겠나. 재밌었던 건 탈출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질서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토미가 배에 타기 위해 주작을 벌일 때에도 양보해주고 심지어 응원까지 해주는 순박한 병사들의 모습. 생존은 그저 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생존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쪽수로 싸우는 육군의 전투에서 나의 생존을 운에만 맡겨야 한다면 그보다 슬픈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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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대표는 볼튼 중령이다. 영화에서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는 유일한 군인이다. 중령은 육군을 모두 대피시킨 뒤에도 홀로 전장에 남는다. 배를 잃은 선장이 차마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어쩌면 당연한 상황이지만. 마지막 순간을 타이타닉과 함께 했던 선장과 설계자의 모습을 연상시킨 장면이다. 역시 멋진 해군! 영국은 강한 해군을 토대로 도약했기 때문에 해군이 소위 갑이다. 왕실 남자 대부분이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하지 않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등장하는 군함마다 죄다 독일군 폭격과 어뢰공격에 당하기만 한다.ㅋ 설마 권위를 향한 감독의 도발은 아니겠지? 어쨌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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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대표는 스핏파이어(영국 전투기) 조종사 팔리어다. 육군 병사들은 "공군은 어디 있는 거냐. 공군은 뭐했냐."며 조롱하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실질적으로 독일군을 상대로 유일하게 활약한 건 공군 뿐이었다. 감독은 스핏파이어와 팔리어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린다. 개인적으로 가장 긴장한 장면도 활공상태에서 벌어진 공중전투씬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전통적 방식의 영웅스러움을 보인 것도 팔리어였다. 영화 내내 얼굴을 가리고 있어 어떤 배우인지 참 궁금했던 사람이다. 목소리나 눈매가 톰 하디가 아닐까 생각하며 톰 하디라면 매우 적절한 캐스팅일 거라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장면에서 톰 하디 얼굴이 딱 나와서 신기했다. 놀란이 날 닮은 것인지, 놀란과 나는 사고체계가 비슷한 것 같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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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육군은 찌질하고, 해군은 위엄에 비해 실속이 없고, 공군은 미약하지만 역시 간지 하나는 짱이다. 끝.


▼출처:  Wikipedia



2017.07.2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