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은 나의 것
▲ 초등 5학년 2학기 국어 1단원
국어 시간 <문학이 주는 감동>이라는 단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문학작품을 읽으면 공감하는 부분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작품과 관련하여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상상을 하면 감동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설명한다. 인상적이거나 공감하는 부분을 찾아보고 그 까닭을 찾아보는 활동도 있다. 먼저 예시를 하나 보여주고, 나머지는 각자 스스로 채워넣으면 된다. 그런데 이때 아무 것도 적지 못하는 아이가 제법 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자유로의 도피>에서 자동인형처럼 순응적인 인간에 대해, "사람은 보통 렘브란트 같은 유명 화가의 그림을 보며 아름답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사실 그 판단은 어떤 특별한 내적 반응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단지 '그림은 아름답다'는 생각 때문에 그 그림을 아름답다고 판단할 뿐"이라고 서술했다.
요약하면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자기의 '주관'과 '취향'에 의지하기보다는 밖에서 정해준 '정답'을 스스로 내면화하려 '애쓴다'는 말이다. 수업을 해보면 심지어 '아이들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감상마저도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략 '언제'부터 이런 양태가 시작하는지, 이건 발달단계 상 '필연적'인지, 그렇지 않다면 정말 학교 교육 탓인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저 나의 역할은 아이들에게서 '죄책감'을 걷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문학작품에서 공감되고 감동적인 내용을 일부러 찾을 필요는 없다. 작품을 읽으면 내가 공감할 만한 내용이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고, 남들은 감동 받은 장면에서 나는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애써 감동 받으려 노력할 필요 없다. 여러분은 작품을 그냥 대면(이말을 자주 써서 아이들도 무슨 뜻인지 안다)하고 그대로 느끼면 그만이다. 좋은 작품이라면, 정말 감동 줄 만한 장면이라면 여러분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정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이야기 하자 아이들도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것 같다. 그런데 혹시 내가 주관주의 미학관을 옹호한 것만 같아 살짝 공그리를 쳤다.
"단,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작품을 잘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전에는 느끼지 못한 감동을 새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공부하면 감동이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초롱초롱하던 아이들 표정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끝.
2017.08.2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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