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스포츠

맥그리거로부터 배우기: 메이웨더 vs. 맥그리거 배틀 이후.

by 라떼아범 2017. 8. 29.

MayMc Battle, 맥그리거로부터 배우기

▲ 출처: http://www.insight.co.kr/news/117621


메이웨더와 맥그리거의 배틀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한바탕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지만, 나 또한 본방사수를 위해 두세 시간을 성실하게 기다린 사람으로서 더는 할 말이 없다. 각각의 통장에 수천수백억이 꽂히는 데 불과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점은 그저 황당할 따름이지만(어쩌겠는가. 그것이 슈퍼스타경제학의 원리인 것을..), 경기를 생방으로 지켜본 사람으로서, 맥그리거에게 배운 게 많아 여기에 적는다.

일단 간단히 감상평부터 해보자. 이번 경기는 의외로 맥그리거가 선전한 경기였다. 나는 그가 6회 정도에 KO 당할 줄 알았다. 메이웨더가 조심스럽게 플레이 한 면도 있겠지만(명색이 복싱 챔피언이 경거망동하다 정타 한 대라도 맞으면 얼마나 망신스럽겠나) 맥그리거가 준비를 철저히 한 건 분명해 보인다. 주변의 평도 대체로 10회까지 버틴 맥그리거를 칭찬하는 분위기다. 물론 2년 만에 링에 복귀해 두 체급 정도나 더 나가는 현역 UFC 스타를 무찌른 메이웨더 역시 경기력으로 비난 받을 구석은 딱히 없어 보인다. 

여기서 잠시 짚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룰’의 존재다. 스포츠경기에서 룰이란 그 자체로 해당 종목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한다. 복싱과 UFC의 룰은 사실상 복싱과 UFC 그 자체다. 그런데 그것은 '형식'으로서만 그럴 뿐, 실제 ‘양태’는 룰 이상의 다양한 요소로 가득하며 룰은 그 모든 걸 결코 담아내지 못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상상력으로 나머지 빈 공간을 채운다. 바로 그것이 스포츠를 스포츠답게 만들어 주는 결정적 요소가 아닐까. 상상한 것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관객은 감동하며, 이를 실현해 주는 선수에 열광하고 환호한다. 축구를 예로 들면, 축구란 종목은 규정된 룰과 그 이상의 다양한 상상의 합이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 최상의 폼으로 이를 실현해주는 메시와 호나우도를 보며 열광한다. 감동은 ‘현실’이 ‘상상’에 도달하거나 넘어설 때 다가온다.

맥그리거의 첫 번째 위대함은 그가 우리의 상상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전술하였듯 이번 매치가 사기극이란 비아냥이 많지만(갓BS2 덕분에 우린 공짜로 봤지만, 미국인들은 100불씩 지불하고 봤다더라), 결코 이를 성사해 낸 맥그리거의 위대함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새로운 룰과 상상, 선수의 만남은 새로운 감동을 가능케 한다. 복싱과 UFC의 대표 파이터가 한 링에서 만난다는 설정 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2년 전쯤 맥그리거가 처음 메이웨더와의 대결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한낱 과대망상 파이터의 객기 정도로 치부했던 사람이 많았다. 만약 결전이 성사된다 한들 과연 복싱과 UFC 중 무엇의 룰을 따라야 하는지 또한 논란거리였다. 그런데 맥그리거가 복싱 대결을 자처하면서부터 상황은 사뭇 진지해졌다. ‘환상'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사실 UFC 룰로 싸우는 게 개꿀잼이긴 했을 것이다ㅋ).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꺼이 상대의 룰을 받아들였다. 메이웨더라면 아무리 큰 대전료였을지라도 결코 UFC 룰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맥그리거가 위대한 두 번째 이유이다.

과연 승자는 누가 될지와 더불어, 과연 맥그리거가 니킥을 날릴지 여부 또한 큰 관심사였다(사실 많은 이가 이를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맥그리거는 니킥을 날리지 않았다. 그랬다간 대전료를 통째로 날려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순한 양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지만(팬으로서 볼거리를 빼앗겨 아쉽긴 하지만), 그가 끝내 주먹만으로 대적해준 덕분에 우리 삶을 지배하는 '룰의 엄정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상상이 자유인들 그 폭은 일단 정해진 ‘룰의 경계’를 넘어서는 안된다. 바로 여기에 맥그리거의 마지막 위대함이 있다.

맥그리거는 우리 삶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이 한 경기로 모두 요약해주었다. 우리는 늘 룰 안에서 살아간다. 그 안에서 나름의 상상을 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때론 상대의 룰을 받아들이고, 일단 정해진 룰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를 속박하는 굴레이기도 하지만, 때론 모든 가능성의 조건이자 출발점이기도 하다.

맥그리거는 예상대로 패했지만, 또한 승리했음을 우린 잘 안다. 그는 수천만달러를 벌었다. 끝.


#쉴드치기어렵네양아치쉐리들


2017.08.2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