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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스포츠

카타르월드컵 해설진 감상평 - [잉글랜드vs.이란] 전을 중심으로

by 라떼아범 2022. 11. 22.

경기는 아쉽게도 이란의 대패. 구자철의 말대로 잉글랜드가 잘하는 것인지, 이란이 못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경기였는데, 이란이 전반에 좀 더 적극적으로 잠그는 전술을 구사했다면 실점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물론 같이 본 축린이 눈에도 보일 만큼 실력차가 확연했기 때문에 어차피 대패를 막긴 어려웠겠지만. 어제 카타르도 그렇고 이란까지 이런 참패를 당해버리니 포르투갈전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 월드컵은 같은 경기를 세 방송사가 따로 중계를 편성하니 채널을 돌려가며 관전하는 게 나름의 재미이기도 했다. 그 후기를 남긴다.

해설진 편성은 다음과 같다.
MBC: 김성주, 안정환, 서형욱 / SBS: 배성제, 박지성, 장지현 / KBS: 이광용, 구자철



개인적으론 선출해설가보다 전문해설가를 선호하기 때문에, 안정환과 박지성만 없었다면 장지현이 해설하는 경기를 봤을 것 같다. 이번에 나는 MBC-SBS-KBS순으로 돌려가며 관전했다.

1. 캐스터

MBC 김성주는 발음과 톤이 안정적이고 전달력도 좋다. 안정환과는 예능에서부터 호흡이 잘 맞고 서형욱과도 오랜 시간 함께 해설해왔기 때문에 두 해설자를 잘 리딩한다는 게 강점이다.

SBS 배성제는 다년간 다양한 종목에서 보여준 발군의 중계스킬이 돋보인다. 어떤 종목을 맡겨도 어떤 해설자를 붙여줘도 언제나 한결 같다. 중요한 순간마다 적당하게 흥분해주는 것도 좋다.

KBS 이광용은 예전보다 확실히 실력이 늘었다. 목소리도 깨끗하고 듣기 좋다. 경기 전에 공부를 많이 하는지 경기나 선수와 관련된 정보를 적절한 순간에 소개해주는 것이 맘에 든다.

2. 해설자

MBC: 일단 난 안정환의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발음이나 목소리 톤이 일정치 않아 듣는 데 다소 힘들다. 해설 중에 감정을 쉽게 드러낸다는 점도 나와는 맞지 않는다. 예전보다 적시에 전술적인 설명을 잘 해주는 점은 향상된 점이다. 서형욱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방대한 축구 지식을 토대로 안정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여전히 감정 표현은 거의 없다. 안정환과 딱 반대성향이기 때문에 이 둘의 조합은 나름 빛을 발한다. 하지만 가끔 삐걱대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서형욱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안정환을 살려주기 위해 적당히 물러선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MBC는 원래부터 안정환-김성주 콤비로 예능해설을 추구하는 곳인데, 그나마 서형욱을 끼워넣어 양심을 지키기는 하니 칭찬해줘야 할까..

SBS: 박지성은 목소리 매력이 떨어지고 안정환같은 예능감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루한 감은 있다. 하지만 발음이나 목소리 톤이 이전보다 상당히 향상된 것 같다. 본인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경기에 녹여내는 유연성도 좋았다. 장지현은 서형욱에 비해선 3인 해설체계에서도 주도권을 쉽게 놓지 않는다. 무게감 있는 독특한 음색과 톤이 그의 성격을 잘 뒷받침한다는 느낌이다. 덕분에 전술적인 부분이나 선수 개개인과 관련된 정보에 관한 설명을 원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박지성이 분명 메인 해설가인데도 말을 길게 하지 않고 캐스터와 다른 해설자에게 주도권을 적당히 양보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현역 때처럼 주연보다는 조연 역할에 재능이 있는 박지성답다. 상황에 따른 대처능력이 뛰어난 배성제를 중심으로 세 사람이 보여주는 케미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배성제와 장지연이야 늘 그 모습일 것이고, 박지성 때문에 이 조합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KBS: 유일하게 2인 체제 해설이란 게 눈에 띈다. 덕분에 이제 해설을 시작한 구자철은 물 만난 물고기가 됐다. 아주 원없이 해설한다는 느낌이다.ㅋ 이번에 해설을 시작하며 KBS의 모 축구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는데, 날카로운 분석력과 안정된 설명력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내가 제일 기대한 해설가가 바로 구자철이었다. 현역시절에도 지능적 플레이에 능했고, 분데스리가에서 오랜 시간 버틴 실력과 끈기, 그리고 잘 알려져있지 않던 동료들과의 융화능력 이런 것들이 해설에 잘 녹아들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오늘은 의욕이 지나쳤던 것일까. 전반 끝날 무렵에 이미 목이 쉬어버릴 정도로 완급조절에 실패한 모습이었다.ㅋ 그래도 전술이해도가 높아 이를 해설에 녹여내는 능력이 뛰어났다. 경기와 선수 관련 정보를 많이 들고 온 이광용과의 호흡도 좋았다. 아마도 오늘 경기를 반면교사 삼아 와신상담한 이후 일취월장한 해설 실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3. 결론

MBC와 SBS는 한국경기에도 이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둘 중에 고르라면 나는 SBS다. KBS가 어떤 조합으로 나올지 모르겠는데, 구자철 혼자보다는 한준희가 합류하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이 조합이라면 난 무조건 이쪽을 선택한다. 약간 우려되는 것은 구자철이 생각보다 경기 중에 많이 흥분한다는 것. 오늘 해설하는 것 보니 구자철은 해설가 욕심이 있는 게 분명하다. 마치 야구의 박용택처럼. (아직 처음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조금만 무게잡고 해설해준다면 안정환, 박지성도 별거 아니라고 본다. 스포츠중계는 묻지마 KBS라고 생각하는 아재들도 여전히 많으니, 기본 깔고 가는 표가 얼마냐 그게.

네덜란드-세네갈 전 보면서 끄적여봤는데, 이 경기는 둘이서 서로 치고 박으니 재밌다. 끝.

2022.11.22.(화)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