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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사회&문화

'가족의 탄생'에서 '탈가족주의'로

by 라떼아범 2017. 8. 31.

'가족의 탄생'에서 '가족주의의 해체'로

호모에렉투스에게는 결혼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 집단에서는 사실상 자유스런 짝짓기가 성행했고 그 이유로 엄마 아빠가 정확히 누구인지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했거나 무의미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 집단의 성격을 '씨족'을 기반으로 한 혈연공동체라고 부른다. 무리 내에서 혈연적으로 가까운 남녀끼리 폐쇄적 짝짓기가 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기준으로는 사실상 근친 간 짝짓기가 통제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배경에서 그들에겐 가족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 같다.

호모사피엔스(현생인류)는 결혼이란 걸 했다고 전한다. 1부1처 개념이나 정서적, 제도적으로 근친을 금기시하는 문화도 어떤 필요에 의해 일부 생겨났다. 호모에렉투스와 달리 그들에게 짝짓기란 말을 붙이는 것이 다소 어색한 이유는 우리가 결혼이란 풍습을 그만큼 신성시 하기 때문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호모사피엔스의 결혼 또는 1부1처 개념은 자연스럽게 '가족'이라는 개념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 집단은 가족, 씨족, 마을 단위가 묶여 구성된 '부족사회'라고 부른다. 즉 '가족의 탄생'이란 인류 지성의 발달과 문화적 성숙의 소산인 셈이다.

가족의 탄생은 혈연적으로 매우 친밀한 공동체 단위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는 다소 느슨한 공동체 단위였을 '씨족'은 물론, 상위 단위로서의 '부족'에 비하여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구성원 간 상호 신뢰나 동질감이 돈독했을 것이다. 가족 개념이 구체적으로나 추상적으로 확립된 이후, 자연스럽게 가까운 혈연과 먼 혈연, 혈연적으로 거의 관계가 없는 개인 또는 집단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경험적으로 근친의 위험을 발견하였다는 가정 하에, 집단 내 좋은 유전자의 전수라는 면에서 분명한 이점이었을 것이다. 즉 가족의 탄생은 인류의 생존 및 번식을 향상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의미한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가족주의'라는 파생개념을 만들어낸다. 가족주의는 다양한 가치 판단에 있어 가족이라는 기준을 우선시 하는 태도를 말한다. 추상적 대상을 인지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에게 여기서 말하는 가족이란, 단지 나와 혈연적으로 매우 가까운 '생물학적 가족'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구별되는 모든 대상에게까지도 확대 적용되는 개념이다. 알 카포네가 자신들을 '패밀리'로 부른 걸 염두에 두자. 가족주의는 자기와 가깝거나 동질적인 다수 사람에게 정서적, 실질적으로 의지하거나, 반대로 그들을 돕거나 보호하는 행위를 자처할 유인이 되므로 여러모로 긍정적 효과가 있다.


▲ 출처: 나무위키(말론 브란도)



하지만 가족주의는 '가족보신주의'나 '가족이기주의'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는 '집단 이기주의 현상'은 바로 그러한 폐해의 단적인 예다.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평수대로 편을 가른다거나, 임대아파트 거주자를 차별하는 행태를 보라. ISIS나 일베 같은 집단에서 타자를 향하는 무분별한 공격과 폭력은 말할 것도 없다. 평소엔 선량하기 그지 없었다는 젊은이가 자살폭탄테러에 가담하지 않나, 낮에는 모범생이던 학생이 밤이면 키보드 앞에서 분열된 자아를 연기하는 충격적 상황들은 모종의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온갖 편향된 시각으로 가득차 나(또는 내가 속한 집단) 이외의 개인과 집단을 철저히 타자화 해버리는 일련의 경향에는 기족주의가 깊숙히 개압한다고 본다.

이런 잘못된 차별과 폭력을 극복할 방안은 무엇인가? 찾아보면 나와 타자 사이의 지나친 선긋기를 지양하고, '세계시민의식'을 갖추자는 것으로 모아진다. 민족이란 애매모호한 개념을 폐기하자는 주장은 더 이상 새롭지 많다. 생협이라든지 마을공동체와 같은, 경쟁보다는 협력에 초점을 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좀더 두고봐야겠지만, 이건 다름 아닌 '탈가족주의'가 아닌가. 가뜩이나 결혼과 출산이 줄고 새로운 가족 형태가 출현하는 것도 고려해 본다면, 가족주의란 말 자체가 시대적 소임을 다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이는 자연스럽게 보다 넓게 일반적으로 적용될 만한 새로운 공동체 의식의 출현을 추동하는 요인이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요약해 보면,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우수한 지능을 토대로 가족이란 사회적 단위를 새롭게 만들어냄으로써 스스로의 생존력을 높이는 효과를 얻기는 하였으나, 그와 같은 패러다임에서 파생되어 사회 전반에 적용된 '가족주의' 전통은 다양한 사회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 아닌 '탈가족주의'란 것이다. 인류 지성의 발전 과정의 한 축이었던 '가족주의'를 더 나은 세계로의 발전을 위해 이제는 버려야 한다는 아이러니라니... 

이게 다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가 저지른 일이다. 너무 똑똑해도 탈이다. 적당히 멍청하게 살자는 뜻이다.ㅋ 고로 나는 아주 잘 살고 있다. 끝.


2017.08.31.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