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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작품

[영화] 본질을 비껴가는 반통찰 즉흥평론: (늦은감 있지만) 기생충

by 라떼아범 2019. 6. 30.

그때가 가장 화제가 되던 때였으니 영화를 지는 제법 지난 편인데, 영화 보고 바로 적어뒀던 아까워서 올려 둔다. (인물은 배우 이름으로 썼으며, 다송이만 극중 이름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 아래로 아래로

영화가 계층관계를 반지하와 저택이라는 수직적 상징물을 통해 드러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수직적 배치가 질리도록 등장할 줄은 몰랐다. 강호의 반지하는 보통의 극빈층 삶과 동일시되던 달동네(높은곳에 위치) 있지 않았다. 탈출한 강호 가족은 계속 아래로 아래로 뛰어야 했다. 저택이 저렇게 높은 곳에 있었는지, 반지하는 얼마나 깊은 곳이었는지 그제서야 알았다. 드디어 차고문을 나서며 잠시 들었던 안도는 이내 불안으로 바뀌고, 공포는 현실이 된다. 가장 낮은 곳까지 달려 도착한 막다른 곳에 그들의 집이 있다. 와중에 도움을 청하는 어떤 이웃과 이를 외면하는 강호 가족의 모습은 그냥 양념 같다. 다음 장면은 강호 딸이 역류하는 변기통에 앉아 그나마 불이 붙는 담배를 입에 꼴아문 모습이다. 그동안 가장 자존심 보였던 그녀이니 더욱 비극적이다.

 

#. 선을 넘지 말것.

영화 내내 선균의 말은 일종의 지침이다. “선을 넘지 .” 

전가정부는 저택에서 2인자 보였다. 강호 아들이 면접을 가정부는 흩어진 인디언화살을 치우며 짜증섞인 말투로 내뱉는다. “어차피 애들 키우는 집이지 .” 자신이 마치 이집의 진짜 주인이라도 되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웃프더라. 나중에 계략에 빠져 캐리어 하나만 끌고 쫓겨날 처지의 사람이 이렇게 선을 넘었다.

강호는 선균에게아내를 사랑하시죠?”라고 묻는다. 그는 사실 그때 선을 넘었다. 선균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 빠른 강호가 몰랐을 없다. 하지만 그렇게 드러내고 싶었던 거다. 자신이 하찮은 사람이 아님을. 신분과 상관 없이 누구에게나 사랑은 똑같이 중요한 화두라서, 어쩌면 그것만이 사이를 전복할 유일한 수단이었는지 모른다. 얼버무렸던 선균과 달리 강호는 아내를 사랑했으니까. 

흥미로운 선균이 여정에게 강호가 선을 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선균은 진실을 말할 없다. 그가 여정을 사랑하지 않는 또다른 진실이 드러나선 되니까. 강호는 그렇게 나름의 우월감을 즐긴 셈이지만 어차피 순간이었다. 최고존엄 다송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우스꽝스런 분장을 강호에게 선균은 잘라 말한다. “당신은 지금 일하는 이라고선을 넘지 말라는 뜻이다.

 

#. 상류 판타지. 무엇이 정답일까?

처음 등장하는 여정은 마당에서 낮잠을 자다 우스꽝스럽게 깬다. 

재벌집 마님은진짜로우아하고 교양 있을 같다. 또는가짜로우아하고 교양 있는 해야 같다. 사실 무엇도 어차피 판타지인 같다. 사실 직접 적이 없어 나도 모르고 누구나 모르기 때문이다. 여정은 과연 어떤 어떤 캐릭터일까? 

일단 시작은 다소 백치로 보였다. 오호라~ 여자는 백치로구나. 어떻게 ~ 하나 보자!! 나도 이렇게 시작했다. 영어 문장을 다소 과도하게 섞어쓰는 여정의 모습은 나의 판단이 맞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무렵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은 별로 무식한 같지 않았고, 오히려 마지막까지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모습을 보인 유일한 어른이었다. 그녀의 우아함과 교양은진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감독에게 먹았다.

! “마약 사줘~” 요건 머냐구? 상관 없다. 그게 그가 마약쟁이란 증거도 아닐 뿐더러, 초반에 윤기사 자를 보니 마약을 제법 싫어하는 같았으니까.

 

#. 협력이냐. 대결이냐.

강호 가족이 저택을 점령하고 마침 전가정부가 찾아왔을 그가 어떤 진실을 가져왔을 알았다. 강호 가족의 진실을 알아내 이들을 협박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협력을 제안한다. 그는 반지하보다도 못한 지하실 삶을 대변하는 자였으니 사실상 도움을 구걸한 셈이다. 강호 가족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비극은 없었겠지만, 그들의 욕심은 이를 거부한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간다. 서로 돕기는커녕 싸우기만 하면서.. 소수 지배층이 다수를 지배하던 논리가 이와 비슷했을까. 주인을 배반한 노예는 다른 노예의 손에 죽더라. 

계단이라도 오르고자 하는 강호 가족의 고군분투는 응원할 만했지만, 그들이 차지한 자리도 결국 누군가로부터 빼앗은 것이었다. 이걸 성취라 해야 할까 폭력이라 불러야 할까. 이미 화해와 협력은 애초에 불가능했는지 모른다.

 

#. 끝과 끝

영화에서 가장 바닥에는 전가정부의 남편이 있다. 그가 유일하게 말을 걸었고, 위기의 순간 도움을 청하는 유일한 대상은 다름 아닌 다송이다. 

다송은 서열상 영화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다. 그가 먹지 않은 짜파구리는 서열에 따라 아빠를 거쳐 엄마로 옮겨 간다. 어떤 이유에선지 딸은 집안 서열관계와는 다소 무관해 보인다. 본인도 좋아하는 짜파구리로부터 홀로 소외된 보면 말이다. 강호 아들과 정분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송은 마당에 인디언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다 모르스부호를 본다. 마당은 강호 가족이 저택을 점령한 강호 아들이 처음 찾은 곳이다. 그는 마당에 누워 하늘을 보며 책을 읽는다. 마당은 바로 부와 여유의 상징, 꼭대기에서도 높은 곳이었다. 컵스카우트에서 모르스부호를 공부한 아이는 열심히 종이에 신호를 받아 적고 비로소 사건은 만천하에 발가벗겨질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송이는 모르스 부호를 해석해낼 능력이 없었는지, 해석하고도 그냥 넘어 갔는지 나는 없다. (참고로 다송이가 실패하길 바랐던 보면 분명 강호 가족 편이었다.)

 

#. 냄새

부자와 가난한자의 갈등이 시작하는 지점이 단순하면서도 디테일이다. 냄새. 구체적으론 반지하 냄새다. 나도 냄새에 민감한 편이니 공감할 만하다.

시각적 위장은 의외로 간단할 있다. 매일 하는 화장, 매일 갈아입는 따위는 매우 유용한 위장도구다. 반면 후각은 위장이 어렵다. 오래 묵은 냄새는 몸을 떠나기 어렵고 물건 어딘가에 남는 법이니까. 

냄새를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이 다름 아닌 다송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강호 딸은 다송을 처음 만났을 이렇게 말한다. “어른의 눈으로 아이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요?” 후각은 시각보다 더욱 원초적이다. 그래서 때묻지 않은아이눈에 보였나 보다. 그래서 아프다.

냄새난다는 말은 사람을 궁지로 몬다. 냄새로 비롯된 강호의 상처는 점점 곪아버린다. 선균은 위기의 순간에도 지하실 남자 앞에서 코를 막고, 강호는 마지막 자존심을 잃고 이성도 잃는다. 

 

#. 현실은 전복할 수 있는가?

계획이 무엇이냐는 아들의 다그침에 강호는 아무 계획이 없다고 답한다. 극중 계획을 갖고 있던 유일한 사람은 강호 아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계획 때문에 상황은 어그러지고, ‘계획에 없던거사는 그렇게 실행된다. 강호의 거사(?) 일종의 전복이었을까? 선균을 해하고 그가 찾아 들어간 곳이 깊은 지하였다는 것이 답을 말해주는 듯하다. 개인으로서 감정 해소 또는 복수을 넘을 없는 한계. 사회의 모순은 그만큼 견고하다.

 

(빼먹은 많아서 처음 글에다 적으려 했는데 생각이 안난다. .)

 

 

2019.06.05.(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