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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작품

[영화] 본질을 비껴가는 반통찰 즉흥평론: 남산의 부장들(치명적 스포일러 포함)

by 라떼아범 2020. 2. 2.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요 근래 <남산의 부장들>을 호평하는 포스팅이 많았다. 출연진도 화려했기에 기대감을 안고 동네 CGV를 찾았다. 재미있게 봤지만 ‘나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영화는 10.26사건이 일어나기까지 국내외 정국과 중정부장 김규평의 고뇌와 결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건의 트리거는 전 중정부장 박용각의 폭로였으니, 결국 발단은 전 부장이 마무리는 현 부장이 나눠 맡는 구도다. 제목 만큼이나 두 부장의 활약은 괜찮았다. 

 

너무 완벽하지 않고 적당히 나약하게 그려낸 김규평은 마음에 든다. 폭주하는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향해 나름의 소신을 지키는 모습이나 충성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면이 그렇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고민하다 결국 일을 저지르는 과정에서도 미숙한 모습을 제법 노출하는 것도 그렇다. 역사적 사건은 왠지 계획적이고 치밀했을 거란 ‘보통의 미신’을 배신하는 건 늘 통쾌하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박용각도 긴장감 있었다. 끈 떨어진 왕년의 2인자의 불안과 처세를 잘 보았다. 실제 역사를 구체적으로는 몰랐었기에 곽용석이 금세 죽을까봐 함께 불안했다. 물론 용케 잘 살아남더라. 경계심을 풀고 성급하게 프랑스로 날아간 듯 그린 건 다소 아쉬웠다(물론 역사를 축약하다보니 그랬겠지…).

 

반면 박통과 경호실장은 너무 뻔했다. 시종일관 이기적이고 폭압적이다. 두 시간 남짓의 한계를 생각해서 경호실장은 대충 그렇다 치자. 그래도 박통까지 희대의 거악으로 그린 것은 무리수였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팽’을 암시하는 박통의 대사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해~”는 영화가 앞서 쌓아놓은 모든 성과를 무색케 한다. 아무리 권위주의 정권 시대였다고 해도 청와대가 갱단은 아니지 않은가? 영화는 열심히 그들이 ‘죽어도 싸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역사적 진위 여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인물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단순한 구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픽션에서 완전한 악역을 가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판타지에서 사우론이나 타노스처럼 잘 만들어진 존재는 그 자체로서 해당 세계관의 필요조건이자 정당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인물을 그런 악당으로 묘사함으로써 얻는 유익은 무엇일까?

 

정말 웃지 못할 장면은 영화 막바지에 또 등장한다. 대통령의 금괴를 슬쩍하는 보안사령관이라니. 나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감독님께서 아무리 전장군을 싫어하셔도 그렇지. 굳이 저런 장면이 왜 들어가야 하지? 집무실을 나오던 사령관이 뒤돌아 ‘어전’을 잠시 응시하는 것 만으로도 12.12의 복선으로는 충분했을 것이다.

 

한줄평. 영화는부장들이라고 써놓고악당들 보여주고 싶었던 같다. .

 

 

2020.02.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