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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작품

[드라마] 본질을 비껴가는 반통찰 즉흥평론: 스토브리그 #4. 노동요?

by 라떼아범 2020. 2. 28.

스토브리그는 코로나19가 전 국토를 유린하기 직전 적당히 종영했다. 무엇 때문인지 그간 좀 바빴고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마무리 글을 쓴다. 요즘 극장 관객이 1/3도 차지 않는 만큼 TV시청률은 좀 올랐을 것 같은데, 난 현재 어느 드라마에도 관심이 없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은 보통 선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기 마련이고, 그 선수들은 소수의 선택된 능력자인 경우가 많다. 그에 반해 평범한 프론트 직원의 시점에서 풀어낸 작품은 일찍이 우리나라에선 별로 없었다.

 

그 차이가 뭐냐면 작품이나 캐릭터의 시점이 관객에게 보다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이 아닐까. 스토브리그에서 이세영팀장만 보더라도 야구 좋아해서 야구팀에 취업해 갖은 궂은 일을 도맡는 모습이 나에게 와닿더란 말이지.

 

나이를 먹으면서 내 직접 경험이 늘어나는 만큼 주변에 아는 사람도 쌓인다. 그중 이런저런 특이한 이력(최소한 나에게는)을 가진 인물도 제법 생겼다. 실제로 프로구단의 프론트를 목표로 취업준비를 한 사람도 있었고, 건너 아는 사람 중엔 현재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그랬다.

 

자주 보게 되면 그냥 해당 업계 사람들이라 치부해도 그만이겠지만, 일반인(?) 눈으로는 그게 쉽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길을 갈 수 있는지 참 궁금하기도 하다. 어찌됐든 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더란 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고등학교 때 프로축구 구단에 선발돼 진출했다가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 두게 됐는데, 그때부터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해 모대학의 체교과에 입학하고 이후 박사까지 마쳤다. 또 어떤 이는 스포츠과학 관련 학위를 취득한 후 국내 모프로야구팀에서 선수들 몸관리를 돕는 일을 한다. 물론 계획대로 잘 안돼 진로를 바꾼 친구도 있긴 하다.

 

스토브리그의 모델이라 할 만한 영화 <머니볼>에는 데이터분석가 피터 브랜드가 등장한다. 스토브리그 백영수(전력분석원)의 오마주가 분명한 인물이다. 그 역시 본래는 통계전문가였고 당시 야구계로 들어온 건 다소 쌩뚱맞을 수 있었지만, 세이버메트릭스가 일반화 된 지금에는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닌 게 되었다.

 

나처럼 야구를 직접 하는 것도 재미있고, 야구를 관람하는 것도 야구를 즐기는 방법이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야구를 만드는 주체는 선수나 코칭스태프로 그치지 않는다. 프론트와 기타 협력자들이 야구를 함께 만든다. 스토브리그엔 그런 것들이 담겨 있었고, 왠지 나도 함께하는 것 같았다.

 

단장 백승수에게 자신을 고용한 구단주와 사장은 이상한 요구를 하고, 챙겨야 할 직원들은 먼가 못마땅하다. 외부 경쟁자는 쉽지 않고, 내부 적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 있다. 만만찮은 조건에서 여러모로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지만, 그보다 그의 일 자체가 인상적이다. 일하는 방식은 지극히 ‘하던대로’인 것 같고, 차갑기가 여간 ‘공적’이지 않다.

 

어떤 일이든 의미가 있으면 자발성이 생기는 법이다. 그는 분명히 돈 때문에 일한다고 말했지만, 시키는 대로 일하지는 않는다. 드라마 미생에서 강대리는 귀에 무선 마이크를 끼고 가래처와 통화하며 가끔 무심하게 출장도 갔다. 그리고 늘 익숙하게 말한다. “장백기씨 일하세요.” 난 그의 타이핑 소리가 이상하게 듣기 좋았다.

 

백승수(강대리도)를 보면 나도 일하고 싶어진다. 마치 노동요를 흥얼이다 자기최면에 걸린 것처럼. 단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난 일을 어떻게 하지? 나와 백승수의 차이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뭐지? 이유는 뭐지? 등등. 요즘 재택근무라 쓰고 재택휴무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이상하게 난 출근을 하고 싶다.

 

구단주와 사장에게 겁없이 들이박는 단장이 과연 현실적이냐는 질문은 물론 유효하다. 당연히 그 반대 사례를 찾는 게 더 쉬울테니까. 하지만 그 시도가 ‘낭만적 캐릭터’를 하나 더 만든 것에 그쳤다면 내가 이렇게 긴 타이핑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즘 구독하는 모 유튜버의 영상에서 job과 career를 구별해 설명해주던데, 그 뜻풀이가 스토브리그와 바로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즐기라’는 말과는 다른 것이다. 내 일이 의미를 갖는다는 데서 단순히 job이 아니라 career이 될 수 있다. 좀더 쓰면 자기계발 격언이 될 것 같아 여기까지만 하겠다.

 

모두가 원하는 결말이었겠지만, 너무 쉽게 생각을 고쳐먹는 권상무와 백승수의 매력에 홀딱 넘어간 게임사 대표(이제훈)는 좀 그랬다. 마치 예의 “가망이 없습니다.” 같은 클리셰를 보는 것만 같아서.

 

첨언. 온통 코로나 얘기 지겹다. 끝.

 

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775252523327816737/

 

2020.02.27.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