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디거 인마 축구 그딴식으로 하면 안 된다!”
어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이런 일이. 너무 신나서 말이 안 나온다.ㅎㅎ 일본이 독일을 이겨버렸다. 0대1로 끌려가다 2:1 역전승.
일본이라면 무조건 져야 속이 시원한 한국인이 많은 걸 잘 알지만, 나는 월드컵에서만큼은 일본이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일본은 탄탄한 기본기와 특유의 패스축구로 강팀을 상대로도 곧잘 대등한 경기를 해온 팀이기 때문에, 특히 기대가 컸다. 사우디에 이어 어쩌면 일본도 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예감.
1. 일본의 승리 예감
일본이 이길지도 모른다는 예감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독일은 여전한 강팀이긴 하지만 요즘 예전보다 확실히 클래스가 떨어져 보인다는 게 첫 번째다. 지난 월드컵부터 보여준 부진한 모습은 클로제 이후 확실한 결정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공격진의 문제다. 그나마 2014년 우승멤버 중 남아있는 건 노이어와 뮐러 정도지만, 오늘 경기에서도 보였듯 두 선수도 이젠 예전 기량이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일본의 거의 모든 선수가 유럽파일 정도로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일본 경기를 많이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멤버 구성으로만 보면 모든 포지션이 역대급 선수들로 구성돼있다. 과거 나카타나 혼다게이스케 같은 수퍼에이스는 아니어도 토미야스, 미나미노, 카마다, 요시다 등 유럽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 많다. 마치 박지성, 손흥민급은 없지만, 구자철, 기성용 같은 선수가 모든 포지션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그 선수들이 모두 좋은 기본기를 갖추고 있고 조직적인 플레이에도 능하다.
세 번째로는 어제 사우디가 메시를 격침함으로써 약팀이 강팀을 잡는 일종의 매뉴얼이 증명됐다는 것이다. 후방을 단단히 잠그고 앞선에선 적절하게 전방압박을 하다 상대 수비진의 실수를 유도하는 방법 말이다. 중원에서 애매하게 볼 돌리다 뺏겨서 오히려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은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아시아팀 중엔 미드필더들의 섬세함과 개인기가 좋은 편이다. 이 매뉴얼에선 한 방의 패스로 역습찬스에서 골을 노리는 전략이 중요한데, 최근 일본 공격진의 한방능력도 많이 향상된 걸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건 사우디를 보고 선수들의 자신감도 많이 올랐을 거라는 것.
2. 일본 승리
전반전은 예상대로 일본은 수비에 치중하며 역습을 노리고, 독일은 꾸준히 공격하는 양상이었다. 구자철은 일본과의 오랜 경기경험을 이야기하며 일본이 이렇게 역습축구를 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고 했는데, 본인이 일본에게 당한 게 많아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월드컵 첫경기에서 독일을 상대로 선수비 후 역습을 노리는 건 내눈엔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다. 안전하게 실점을 최소화하고 역습으로 한두 골 정도를 도모한다면 이상적이란 생각이다.
아쉬웠던 건 첫 실점에서 우측 윙백 사카이가 너무 쉽게 공간을 내주었다는 것이다. 경기 내내 사카이가 측면을 자꾸 비우길래 불안불안했는데, 결국 패스 한 방에 사단이 났다. 전체적으로 오밀조밀하게 수비라인을 잘 잡던 일본이 너무 쉽게 위험을 초래한 것이다. 이후에도 운이 좋아서 다행이지 몇 차례 더 추가실점 위기가 있었다. 대부분 우측 측면에서 문제가 보였고, 그나브리와 무시알라의 개인기에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승리에는 운이 따라야 하는 법인데, 수비는 다 벗겨놓고 마무리를 제대로 못하던 두 선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일본은 후반 들어 라인을 끌어올리고 공격빈도를 높이기 시작했는데, 준야와 아사모가 앞선에서 여러차례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특히 수비에서부터 주로 우측으로 빌드업을 해나갈 때 요시다나 토미야스, 예전부터 주목했던 엔도와 준야(오늘 젤 잘함)가 개인기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자신감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몇 차례 찬스에서 두 골이나 만들어내는 일본이 대단하다.
결승골을 넣은 아사모의 퍼스트터치는 마치 베르캄프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았다. 경기 내내 성급하고 어설픈 마무리로 내 욕을 받아먹던 선순데 움직임이 좋더니만 결국 한 건 했다. 어차피 축구는 한방으로 말한다. 설마설마하며 따라가던 상대수비와 노이어 골키퍼는 왜 저렇게 엉성하게 대처를 했는지.. 사실 저게 골까지 될 상황이었나 싶은데, 독일수비가 다소 안일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골이 들어가는 순간 환호를 지르고 말았지만.ㅎ
예상대로 독일은 시종일관 단조로웠고, 나름 변화를 만들어줄 만한 능력이 있었던 무시알라, 그나브리, 권도안은 결정력이 부족했다. 최다골 뮐러는 특유의 공간예술을 결국 만들지 못하고 아재축구만 하다 나왔고, 노이어는 4년 전 한국에게 일격을 당할 때 그 모습이었다. 그리고 껑충껑충 뛰며 상대선수를 조롱했던 뤼디거는 이번 패배를 부른 최악의 노매너플레이어로서 응징당했다.
마지막까지 전투적으로 돌진하고 태클하던 일본 선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짝짝짝!!!
3. 해설
어쩌다 계속 해설진 감상평을 적고 있다. 이틀 전 이광용, 구자철 콤비의 해설을 보며 여기에 한준희가 더해진 조합이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내가 원하던 그 조합이 이뤄졌다. 이 조합이 결국 내일 한국전도 중계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로선 KBS에선 가장 나은 조합이다.
첫 경기에서 목이 쉴 정도로 오바했던 구자철은 오늘 드디어 ‘정도’를 찾아낸 것 같다. 한준희라는 거목의 존재가 그에게는 큰 힘이 되었으리라. 이광용은 한준희와 경기중계와 경기분석 방송 등에서 수년간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서로의 특징을 너무 잘 안다. 결국 구자철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부여하고 그의 실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라 하겠다.
결과적으론 성공이다. 이란전에서 보였던 조급함은 더이상 구자철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한준희는 본인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마저도 질문 등의 방식으로 구자철에게 판을 깔아주는 걸 볼 수 있었다. 구자철은 굳이 말을 빨리 하지 않아도, 뭔가 아는 척을 하지 않아도 편하고 쉽게 해설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어차피 독일축구와 일본축구을 가장 많이 경험한 사람은 구자철 본인이니까.
한준희는 이제 아재가 됐고 그에 버금가는 해설자가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차마 버릴 수가 없다. 선수 한 명 한 명의 최근 폼변화까지 읊어주는 해설을 봐야지 누구를 보겠나. 여담으로 지난 크로아티아:모로코 경기 보는데 어떤 해설자의 “저 선수 다 잘하는 선수예요~”라는 멘트 보고 채널을 돌려버렸다. 바로 같은 상황에서 KBS 임형철은 “이 선수 소속팀에서 지난 몇 경기는 폼이 어쩌구저쩌구, 지난 시즌엔 어느 팀에 있으면서 어쩌구저쩌구, 그래서 이 모습은 최근 폼에서 드러난다 어쩐다.”라고 하더라. 누구를 고를 것인가? 일단 외국 선수들 많이 나오는 경기는 어쩔 수 없다. 해외축구 전문가가 해설하는 곳에서 봐야 한다.
더 쓸 게 많지만 스페인 코스트리카 경기를 봐야 해서 이만 끊어야겠다. 요건 참고로 장지연 해설의 SBS로 본다. 역시 스페인은 엄청 잘한다. 우루과이도 잘하는데...
2022년 11월 24일(목)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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