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눈. 이란vs.웨일즈 리뷰>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발견한 [청룡영화제]에서 수상한 배우들이 모두 한결같이 감독에게 영광을 돌린다. 시나리오도 감독이 쓰는 경우가 많고 감독의 기획과 판단에 따라 영화의 상당한 부분이 결정되니까. 축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감독에 따라 팀의 역량과 색깔은 많이 달라지니까. 차이가 있다면 영화 감독은 기획과 촬영 모든 과정에 개입하고 마무리 편집도 본인이 통제하지만, 축구 감독은 경기가 시작된 이후에는 제한적으로만 개입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축구에서 결과를 만드는 것은 결국 선수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책임은 감독이 진다. 그래서 축구 감독이 어렵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월드컵을 봤지만, 이번 월드컵은 그 어느 때보다 ‘감독의 눈’으로 경기를 본다. 스포츠는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의식적으로도 플레이어의 눈으로 경기를 보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젠 몸이 쇠해서 그런가. 선수에게 감정이입이 안 되나 보다. 물론 라이프치히의 돌풍을 일으켰던 나겔스만 감독은 이제 고작 35이고, 바이에른 뮌헨을 맡은지 2년째다. 나이나 스태미너가 감독과 무슨 상관인가. 여하간 이번 대회 아시아 팀의 선전에서 감독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당근 거래할 일이 있어서 집앞에 나가는 김에 라떼(반려견)와 산책도 하고 들어왔더니 이란과 웨일즈의 후반전이 진행 중이었다. 오늘은 이란이 꽤 잘한다. 잉글랜드에게 뺨 후려쳐맞은 1차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란의 에이스지만 당시 교체멤버로 나왔던 아즈문은 골대를 때리는 등 맹활약하고 있었다. 다른 선수까지 이란은 두 번이나 골대를 맞췄다고. 웨일즈의 경기력을 보아하니 어쩌면 이란이 일을 내겠다 싶었다.
후반 중반부터는 이란이 근소하게 경기력에서 앞서기 시작했다. 아즈문은 부상으로 실려나갔지만, 익히 보아왔던 이란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몸싸움을 회피하지 않고 줄기차게 측면을 두들기면서 투쟁하는 그것. 오늘 이겨야 하는 건 웨일즈도 마찬가지라서 양팀 모두 공격일변도이니 서로 아슬아슬한 상황이 여러 번 연출된다.
결정적 순간은 최전방공격수 타레미의 저돌적 스프린트와 상대 골키퍼의 뒤늦은 하이킥. 이 파울로 골키퍼에게는 퇴장 명령이 내려지고 이란은 완전한 승기를 잡는다. 남은 시간은 약 10분. 이제 체력이 소진된 양팀 선수들이 서로 뒤엉켜 공방이 오가던 중 이란은 찬스를 놓치지 않는다. 첫 골은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두 번째 골은 우아한 칩슛으로 멋지게 만들어냈다.
이렇게 되니 이란의 케이로스 감독이 달리 보인다. 이기든 지든 역시 자기들 축구를 해야 한다. 한국도 우리의 축구을 했듯.
웨일즈의 에이스 가레스 베일은 이젠 전성기 때 폼을 완전히 잃은 것 같다. 내가 보는 동안 단 한 번도 위협적인 모습은 커녕 볼터치 자체가 거의 없을 정도. 때때로 소속팀에선 죽쑤다가도 국가대항전에만 오면 펄펄 날던 선수들(파울로 로시, 스킬라치, 클로제? 머 이런 선수들)처럼 베일도 좀 잘해주길 바랐지만..
아시아팀들이 연일 좋은 경기를 펼치니 참 즐겁다. 지금 카타르는 세네갈에게 0:2로 뒤지다가 첫 골을 넣었다. 이제 좀 자신감을 찾았나 싶어서 기대감이 든다. 그런데 지금 막 추가골을 먹었다… 또 지네. 이건 감독 탓인가 무엇 때문인가... 잘 좀 하지..
밤이 깊어져서 그런가 괜히 감상적인 생각도 드는데. 내가 있는 곳에서 나는 감독 자격이 있는가?
2022.11.25.금.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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