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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스포츠

벤투 4년 더? [한국vs.우루과이]전 관전평

by 라떼아범 2022. 11. 25.

<벤투, 4년 더? 한국:우루과이 관전평>

동네 호프집에서 경기를 보고 돌아온 후 간단히 후기를 남긴다. 우리 대표팀 오늘 정말 잘했다. 4년간 연마한 벤투표 빌드업축구가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 같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세계적 강호를 상대로 이 정도 경기력을 보여준 적이 과연 있었던가 싶다.



1. 빌드업축구가 되네?

4년 내내 연습하고 끈질기게 스타일을 고집하니 결국 됐다. 오늘 경기는 내가 본 벤투호 역대 최고의 경기력이었다. 사우디와 일본의 선전을 보면서도 한국팀에 대해서는 나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빌드업능력과 조직력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 내가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벤투감독은 팀을 정말 제대로 바꿔놨고, 선수들의 역량도 감독의 기대를 충족시킬 정도였으니까. 우루과이의 발베르데, 벤탕쿠르를 상대로 저 정도 점유율이 가능해? 공수 간격을 촘촘히 유지하며 안정된 패스웤이 이렇게 된단 말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몇 차례 위험한 상황이 있기는 했지만 전반전은 정말 훌륭했다. 우리도 거의 골에 가까운 상황을 만들어냈고, 거의 대등하거나 오히려 더 우세한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방압박을 충분히 해주면서도 상대에 끌려다니며 체력을 낭비하지 않고 적당히 후퇴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란이 대패한 원인 중엔 무지성 전방압박도 한몫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아쉬웠던 건 골이 나지 않은 것. 연결까진 좋았는데 더 섬세하고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던 순간에는 황의조, 손흥민의 창끝이 무뎠다.

후반전에는 점유율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각성한(?) 우루과이에게 끌려가는 모습이었다. 수아레즈가 카바니로 교체되던 등 몇몇 선수교체가 이루어진 후 우루과이의 플랜B가 가동된 듯하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이강인, 조규성, 손준호를 투입하며 기회를 엿보았지만 결정적인 패스미스가 발생하는 등 오히려 경기력은 전반보다 떨어진 느낌이었다. 작은 정우영이 아닌 이강인을 투입한 게 의외였는데, 우루과이의 압박 속에 기대했던 이강인의 한방은 없었다.

2. 인상적이었던 선수

나상호는 이강인과 교체되기 전까지 공격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년 전만 해도 빠르기만 하고 의욕은 넘치지만 어설픈 그저그런 공격수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많이 성장했다. 최근 평가전 때마다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서 이번 대회에 무척 기대했는데, 전반 때는 우측 전방을 지배했다고 평해도 될 만큼 좋은 돌파를 보였다. 윙백 김문환과의 호흡도 좋았다.

황인범은 마치 모드리치 같았다. 우리 선수 중엔 개인기가 좋은 편인데 유럽리그에서 오랜 시간 활약하며 볼간수 능력과 시야, 패스능력이 더욱 향상된 모습이다. 큰 경기에서 떨지 않고 본인의 실력을 100프로 유감없이 발휘했다. 기습적으로 몸을 돌리며 탈압박한 후 우측 전방으로 뿌려주는 패스들이 특히 좋았다. 교체 없이 90분 내내 비슷한 폼을 보였다는 게 놀랍다.

김문환은 황의조에게 패스한 상황을 포함하여 여러 차례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다. 나상호와 더불어 사실상 전반전 공격을 주도한 선수가 바로 김문환이었다. 최근 평가전에서 너무 잘해서 기대했던대로 오늘 너무 잘했다. 벤투가 최근 발굴한 최고의 자원이라 생각한다. 월드컵 이후 바로 유럽으로 진출할듯. 한국팀의 고질적 문제가 이영표, 송종국, 차두리 이후 이렇다할 윙백자원이 취약했던 것인데, 김문환과 김진수는 기동력과 활동량을 바탕으로 이 고민을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손흥민은 역시 손흥민이었지만 카세레스가 계속 귀찮게 따라다고 공을 잡을 때마다 다른 수비수가 더 달려드니 제대로 활약하기 어려웠다. 왼쪽 페널티코너 부근에서 중앙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감차를 한 번 했어야 했는데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상호와 황의조에게 기회가 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건 바로 손흥민의 존재 자체였다.

물론 다른 선수들도 잘했다. 우리 팀이 전반 내내 볼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며 중원싸움에서 우루과이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었던 데는 이재성과 정우영의 역할이 컸다. 김민재와 김영권, 김승규는 기대했던대로 안정적이었다. 황의조는 전반전 김문환이 패스한 완벽한 찬스를 허공으로 날려버린 게 좀 컸다. 요즘 눈에 띄게 떨어진 폼 때문인가 생각하니 더 아쉬웠다. 이번에 조규성에게 거는 기대가 큰데 오늘은 시간이 짧았다. 이강인은 다음 경기 때 한 번은 뭔가 보여줄 것 같다.

3. 우루과이 칭찬

누녜스는 정말 대단하다. 지난 시즌 포르투갈리그를 폭격하고 리버풀에서 거액에 영입한 누녜스. 시즌 초반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해서 돈값 못한다는 욕도 먹고, 옆동네에서 미친활약하던 홀란드와 비교도 당하고, 가끔 탐욕축구을 시전하며 팀원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지만, 인물은 인물이었다. 오늘 가슴이 콩닥콩닥 깜짝 놀랄 때는 늘 그 자리에 누녜스가 있었다. 저 덩치에 저런 스피드와 유연성이 가능하다니. 게다가 발재간, 패스, 슈팅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저런 공격수 한 명 있으면 감독으로서 얼마나 좋을까.

발베르데는 레알마드리드에서 요즘 미쳤다. 미드필더임에도 골도 많이 넣고 거의 완성형 미드필더로 평가를 받는 선수인데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오늘 톡톡히 보여줬다. 벤탕쿠르보다 전방에 위치하며 팀의 볼배급을 맡아 누녜스나 수아레즈에게 찬스를 만들어주거나 본인이 직접 강력한 슈팅으로 활로를 열려는 시도도 보여줬다. 결국 골대도 한 번 강타했고.

누녜스와 발베르데를 보면 우리에게도 저 정도 피지컬과 섬세함을 가진 공격수와 미드필더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부러움이 든다. 김민재라는 불세출의 수비수를 갖게 되긴 했지만, 좌우윙백이나 황인범, 이재성의 피지컬은 두고두고 아쉽다는 생각이다. 몸싸움에서 조금만 더 버텨준다면 우리팀은 훨씬 강해질 것 같다.

마지막으로 카바니. 수아레즈와 더불어 이제 마지막 월드컵을 맞은 선수. 개인적 애정을 살짝 더해서 이야기하자면 카바니는 너무 낭만적이고 매력적이다. 오늘도 후반 교체멤버로 들어와서 몇 차례 아크로바틱한 순간을 보여주었는데, 저러다 벼락같이 한 골 넣는 게 아닌가 두려움을 주더라. 다행이 득점은 못했지만 그 특유의 진지한 열심모드는 여전히 멋지다.

4. 전망

지금 포르투갈:가나전을 보고 있다. 포르투갈은 강하긴 하다. 포르투갈은 우리가 이기기엔 좀 무리일 것 같긴 하다. 개인기가 지나치게 좋은 주앙 펠릭스 같은 선수에게 농락당할 수도 있겠다. 페르난데스, 베르나르도 실바와의 중원싸움도 힘겨울 듯하다.

가나도 잘한다. 가나가 포르투갈에게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다. 첩첩산중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팀 실력을 보니 잘하면 가나는 이길 수도 있겠다. 원래 예로부터 한국은 아프리카팀에 강했다. 지금 경기 보면서 벤투도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2022.11.25.(금)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