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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철학&문학

[책] 사람은 그가 읽은 책이다.

by 라떼아범 2014. 2. 18.


군생활 Ready Go~!!


2007년 3월, 저는 남양주에 위치한 73사단의 한 포병대대에서 본격적인 군복무를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4개월 간의 후보생 훈련, 또 다시 4개월 간의 포병학교 OBC교육이 있었습니다. 먼저 사단장님께 신고, 이어 연대장님께 신고, 마지막으로 대대장님께 전입신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신고는 따로 있었으니,, 같은 대대의 선임 장교들에게의 신고입니다...(드디어 지난한 군생활의 시작입니다.ㅡㅡ;)


사실 대대의 선배 장교들에게는 전날 이미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디에나 그렇듯, 바로 위 선임이 제일 무서운 법이죠. 저는 안타깝게도(?) 바로 8개월 선배를 3명이나 만났습니다.(다행히 좋은 분들이었지만...) 선배들은 저를 데리고 부대구경을 시켜주었습니다. 벚꽃구경, 단풍구경과 같은 일반적인 구경을 상상하시면 안됩니다. 갓 부임한 장교에게는 식은땀이 절로 날 정도로 긴장이 되는 과정이니까요. 


다음 코스는 BOQ라고 불리는 장교숙소입니다. 부대 울타리 안에 있는 이 낡은 건물은, 간단히 말하면 장교들이 생활하는 원룸과 같은 곳입니다. 저희 부대의 BOQ는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아랫층은 BEQ(부사관 숙소)였고, 2층에만 장교들이 기거했습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BEQ+BOQ 건물이었던 것입니다. 


자대배치를 받기 전 장교들은 이 BOQ에 대해 나름의 환상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요, 그 것은 단체생활을 하는 일반적인 병사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개인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 내지는 우월감과 비슷한 감정입니다. 게다가 초고속인터넷망까지 지원되는 최첨단 시설(?)은 군인신분으로 외부공간과의 소통을 가능케해주니까요.


저는 포병학교에서 4개월 간 같은 방을 썼던 홍석이와 또다시 같은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일단 간단하게 짐을 풀고 선배의 방으로 갔습니다. 왜냐구요? 선배가 불렀으니까요.ㅎㅎ


그런데... 저는 그 곳에서 평생 저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이 문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 블로그 올리기 전 메모




사람은 그가 읽은 책이다.


그 선배의 방 구석 벽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람은 그가 읽은 책이다."


이처럼 공격적인 말이 어디 또 있을까요?

처음에는 저게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하고 음미해보니 그 의미를 알 수 있더군요. 사람의 생각과 사고, 가치관과 인격을 만들어주는 데 책만큼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있을까요? 물론 책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일, 개인적 경험, 주변 사람 등에 의해 사람들은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책이란 놈 만큼 단단한 논리성을 바탕으로 일관된 힘을 갖고 읽는 이로 하여금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있을까요? 사람은 책을 읽음으로서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인격이 완성되어져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닮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는 그 사람이 쓴 책을 읽나봅니다. 책을 읽는 행위는 바로 그 책과 닮아감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그 책을 쓴 사람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런 책의 힘을 저 문장처럼 정확하게 짚어내는 표현이 있을까요? 그래서 그동안 많은 현자들이 그렇게도 책의 가치를 칭송했었나봅니다.. 


그렇게 저 문장은 저의 뇌리에 강하게 아로 새겨졌습니다.


▼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앞 헌책방


사실 문장을 보았을 때 다음 두가지의 쓸데없는 생각을 했는데요. 


첫째, 저 문장을 최초에 벽에 새긴 사람은 왜 굳이 저런 표현을 썼을까? 

즉, 사람=(읽은)책. 이런 등식인데요. 저는 이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사람은 책을 통해 배운다"라든가, "사람은 사고나 가치관은 책을 통해 형성된다." 등의 무척 자연스럼고 논리적인 표현(당시 제 생각이었어요.ㅎ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저런 단정적이고 비논리적인 표현을 썼느냐 하는 것이죠. 한동안 저 문장을 볼 때마다 참 불편했던 거에요. 저는 이 때까지만 해도 참 낭만이 없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저도 저 표현이 익숙해지더군요. 그리고 지금은 저 표현이 가진 놀라운 힘, 바로 '통찰'의 무게를 실감합니다. 


둘째, 저 오래돼 보이는 글귀를 왜 아직까지 제거하지 않았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을 수 있었는데요. 저 글귀가 워낙 강력하게 새겨져있었기 때문입니다.ㅎㅎ 어차피 이곳에 잠시 머물러갈 간부들(장교+부사관)에게 큰 노력을 기울여가면서까지 저 글귀를 지워야할 당위성을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건물 곳곳에서 드러나는 주인의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참혹한 광경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지저분하고, 잘 망가져있는 시설들...) 물론 그 방을 거쳐간 사람들이 이 문장을 마음에 들어했을지도 모르지요.




생각의 근원을 추적하기


그 날 이후로 저에게는 재미있는 습성이 하나 생겼습니다. 가끔 어쩐 주제에 대해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입장에 대해 그 근원을 찾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즉, 언제 어떤 계기를 근거로 지금의 관점과 생각을 갖게 된 것인지 '추적'하는 습관 말입니다. 특별한 경험때문이었는지, 혹은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서였는지 회상해보는 것이 점차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역시 대부분의 생각이 책을 통해서 비롯된 경우가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의 추적은 끝은 대부분 책이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거의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러가기도 합니다.


▼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앞 헌책방



축지법(法)


땅을 접어서 먼거리를 짧은 시간에 주파하는 것을 축지법(縮地法)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는 행위는 지혜를 접어서 짧은 시간에 습득해버리는 '축지법(法)'을 가능케해줍니다. 글쓴이의 오랜 공부와 경험, 사유의 결과물이 곧 책입니다. 그래서 좋은 책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요즘 독서량이 많이 줄어든 자신을 반성해봅니다. 오랜만에 저 문장이 갑자기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앞 헌책방에서 발견한 [상대성이론], [셜록홈즈] 영문판 오리지널



2014.02.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