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아래 영상을 보고 든 생각을 빠르게 적어봤다. 오랜만의 포스팅.)
갈등 권하는 사회를 요구한다.
우리 사회를 '갈등 사회'라고 한다. 여기서 갈등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이것은 갈등이 늘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에 갈등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여기는 일종의 편견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사회라는 것은 개인의 집합체이다. 물론 개인과 사회라는 개념은 논리적인 구별일 뿐, 사실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개인은 사회를 떼놓고 존재할 수 없고, 사회 역시 개인 없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사회라는 것을 보자. 사회는 개인의 집합이라고 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저마다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룬다. 개성이라는 것은 개개의 사람들이 갖는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생김새, 성격, 취향, 특기 등 다른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런 개성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남녀가 만나 결혼에 이르고 결혼생활을 이어 가는 상황을 보자. 단 두 사람이 만나서 공동생활을 하는 데에서도 우리는 숱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물며 한 두 명도 아닌, 수십, 수백, 수천만명의 사람들로 구성된 우리 사회, 정확히는 대한민국이라는 추상적 집단에서 갈등이란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만약 이런 갈등을 악이라고 규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우리 인간사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보아야 한다.
퀸은 단 한번도 멤버의 교체나 탈퇴 없이(물론 프레디 머큐리는 20년 전 유명을 달리하였다)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락그룹이다. 퀸의 리드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는 위 영상에서 멤버들이 모두 강한 개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팀을 지켜온 비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로 갈등을 숨기지 않고 다 꺼내놓고 서로 다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치열한 다툼의 과정에서 오히려 공동의 목적(음악적 성과)을 이루는 데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의 반대 사례를 앞서 언급한 남녀 간의 결혼 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황혼이혼을 언급하려 한다. 평생동안 부부 사이의 갈등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소통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던 많은 부부들이 인생의 후반부에 '갑작스럽게' 이별을 선택하는 현상 말이다. 이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문화(이는 명백히 유교적 전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속에서 잃어버린 정체성(앞에서는 개성이라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은)이 만들어낸 참극이다. 무조건 순응하며 갈등을 회피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갈등은 표출되지 않고 담아두었을 때 결국에는 곪아서 터지게 된다. 퀸의 사례에서처럼 갈등은 오히려 장려되어야 한다. 다툼은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의 목적(여기서는 부부생활)을 달성하는 데 필요조건이 된다.
우리 나라에서 유독 사회적 갈등 문제를 악으로 규정하는 풍토는 정치 문제에서 두드러진다(이 역시 유교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서구 민주주의 사상에서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주로 사회계약설로 요약되는데, 그 이론에 따르면 일단 국가는 개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 ‘취해진’ 하나의 정치 시스템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유독 국가에 대해서는 '절대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국가는 개인의 삶을 위한 '전제'로서 그 정당성을 갖고, 아울러 국가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이 천부적인 권한을 부여받아 행사하는 것도 당연해진다. 그러니 ‘나랏님’이 어련히 잘 알아서 다스리지 않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이 일반화되고, 그런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감시하는 것은 반동과 다름 없다는 식의 신민적 태도가 권고되는 것이다. 이런 배경이 바로 갈등을 악으로 규정하는 '잘못된 생각’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 사회는 알아서 좋은 쪽으로 잘 돌아갈텐데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몇몇 ‘불순한’ 사람들 때문에 사회혼란, 즉 갈등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회가 얼마나 복잡한 곳인지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사회라는 공간은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이 얽히고 섥힌 그물망과 같고, 각자의 색깔을 지키며 아무렇게나 뒤섞인 샐러드그릇과 다름 아니며, 그 각각의 재료(개인들)가 반응하고 소화되며 녹아서 섞이기도 하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다. 여기서 끊임없이 편을 짜고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갈등’은 우리 사회가 무척 건강하다는 신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끊임 없이 생겨나는 갈등이 감춰지지 않고 드러나며, 갈등의 중심에 놓인 개인들은 그 갈등을 표출하는 데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일단 갈등이 표출되었을 때 다른 사회 구성원들은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협력하고 노력한다. 결국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 갈등이 잘못이라고 지적하며 매사에 순응하거나 반대로 손가락질하는 태도를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잘 드러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만들고, 발생한 갈등이 일어난 원인과 이유를 따져보고 잘잘못을 공정하게 가림으로써, 향후 곪아 터지는 사태(세월호 사태와 같은)를 예방하는 일인 것이다.
2015.01.1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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