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준호는 개콘에서 자주 망가진다. 지난 밤 개콘에서 어김없이 망가지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최근 그의 부침이 겹쳐져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적어봤다.)
망가지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인기코너 [닭치고]에서는 기억력이 닭 수준밖에 안되는 선생닭과 학생닭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재미나게 그린다. 이 코너의 마지막은 늘 교장닭(김준호)이 망가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오늘 교장닭은 얼굴에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 기모노 분장까지 하며 철저하게 망가졌다. 이는 함께 연기하는 개그맨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오늘도 김준호의 ‘몸개그'는 성공적이었다. 보는 방청객이나 시청자 모두 이 순간 한바탕 크게 웃었다.
몸개그라는 말은 이제 개그프로그램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쓰일 정도로 흔한 말이 되었다. 우리는 몸짓과 행동거지가 어색하거나 우스운 사람에게 몸개그라는 표현을 쉽게 사용한다. 심지어 스포츠선수가 경기 중 실수로 넘어지거나 웃긴 장면을 연출했을 때 두고두고 놀려먹는 용도로 몸개그라는 훈장을 붙여주기도 한다. 몸개그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 개그 장르 중 하나로서 ‘슬랩스틱’이라는 것이 이미 있었다. 본래 슬랩스틱은 연극무대에서 쓰이던 긴 막대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슬랩스틱은 부딪혔을 때 아프지는 않지만 과장된 큰 소리를 냈다. 굳이 특이한 성적 취향(S&M)이 아니더라도, 타인의 가학적 행위를 보며 쾌감을 느끼는 심리적 기제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몸개그의 대표라 한다면 내가 어렸을 적 최고의 스타였던 심형래(당시 심형래는 정말 연예인 중 최고의 스타였다)를 들 수 있겠고, 해외 출신으로는 미스터 빈으로 더 잘 알려진 로완 앳킨슨이 우리나라에선 유명하다. 그들 말고도 숱한 스타들이 몸개그의 바통을 이어받아왔다.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김준호도 그 중 한명이다. 김준호는 실력이나 유명세 면에서 단연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몸개그꾼이라 부를만 하다. 그는 지난 십수년동안 개그콘서트를 지켜오며 연기력과 입담, 호감도 등 모든 면에서 대중의 인정을 받은 몇 안 되는 개그맨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작심이라도 한 듯 몸개그에 열중하고 있다.
대중은 아무에게나 몸개그를 ‘허락하지’ 않는다. 즉 몸개그에도 자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서 살짝 언급을 했듯이 실력과 유명세는 그 기본이다. 우선 실력이 중요한 이유는 당연하다. 몸개그를 보는 대중의 판단은 참으로 이중적이어서, 실력 없이 몸으로 승부하려 하는 개그맨에 대해 결코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데뷔 초반 몸개그에 승부를 걸다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간 숱한 이름 모를 개그맨들이 이를 방증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몸개그라 한들 뛰어난 연기력과 재치있는 입담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즉 실력은 몸개그를 위한 필요조건인 셈이다.
유명세는 마치 트랜지스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 몸개그가 더욱 빛나게 하는 증폭제가 바로 유명세인 것이다. 가끔 개콘에 까메오로 등장하는 스타들이 개그맨들 사이에서 몸개그를 펼칠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라. 우리는 좀 더 유명한 누군가가 망가지는 모습에서 더 큰 짜릿함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와는 저멀리 있는 것 같이 느껴왔던 ‘그 사람’이 사실은 우리와 별다르지 않다는 데에서 느끼는 동질감과 안도감일 것이다. (살짝 화제를 빗겨나 보면, 정치인과 대중의 관계가 이와 다르지 않다. 대중 안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이지 않는 태평양 건너 어떤 지도자와 우리의 또다른 지도자를 보면 답은 뻔하다.)
그런데 나는 이 두 가지 외에 중요한 한 가지를 더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동료로부터의 존경과 인정, 신뢰이다. 오늘 김준호라는 개그맨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김준호는 개콘에서 철저하게 망가졌다. 그리고 그의 동료들(모두 후배)은 최선을 다해 이를 도왔다. 밀가루가 묻은 쿠션과 담요를 사정없이 내리치며, 밀가루가 김준호의 얼굴에 고루 묻게 했다. 그 순간 그들의 표정은 마치 영화 [명량]에서 거북선의 노를 젓던 격군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들 역시 터지는 웃음을 참지는 못했지만..ㅎㅎ 그들의 이와 같이 선배를 돕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바로 존경과 인정, 신뢰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긴 시간 개콘을 지켜온 선배에 대한 존경과, 그의 존재와 실력에 대한 인정,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방향키를 내어주고 자신은 기꺼이 노 젓는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신뢰 말이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하실 줄로 안다. 하지만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후배들로부터 그와 같은 열열한 지지를 받았던 이 개그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는 요즘 그 어떤 사람이 하는 몸개그보다 김준호의 몸개그를 보는 것이 가장 즐겁다. 그의 몸개그는 진한 간장과 같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김준호라는 브랜드와, 그를 힘껏 밀어주는 후배들의 사랑, 마지막으로 개콘과 세월을 함께한 대중들의 응원을 모두 담아낸 깊은 맛의 간장 말이다. 그래서 그는 망가질 자격이 있다. 아니 계속 망가져야 한다.
2014.01.26.(월)
(이 글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코코엔터> 관련 공방 건과는 무관하게 작성되었다. 만약 김준호의 법적 또는 도덕적 책임이 불거질 경우 이 글은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그을 찬양(?)한 것이 되므로, 필요에 따라 삭제될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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