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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사회&문화

먹기의 새로운 태도. <소리에 집중하기>

by 라떼아범 2017. 3. 5.

먹기의 새로운 태도. <소리에 집중하기>






타고나기를 가만 앉아 남들 노는 꼴은 못보는 성질이다 보니, 쇼 오락 버라이어티 리얼 따위의 온갖 예능프로그램을 즐기지 못한다. 하물며 천문학적 수입을 거둬들인다는 인터넷먹방 BJ들조차 나에겐 관심권 밖 안드로메다에 있다. 


그런데, 좋아요 평균 10회의 나름 준수한(?) 페북인으로서 아침 저녁 이곳을 드나들며 먹방 BJ가 출연한 먹을거리 광고를 자연히 보게 됐다. 놀라운 건 첨엔 그냥 그런가보다 했던 것이 두세번 반복시청하는 동안 저녀석 먹방이 대체 왜 인기가 있을까 나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는 것이다.

결론은 저놈의 '먹는 소리'였다. 지나치게 쩝쩝거려도 안되지만,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 건 전혀 먹음직스럽지 않다. 적당히 야물딱지게 썰고 베고 부수는 치아의 왕복운동을 소리로 표현해내야 한다. 이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곳에 마이크가 설치돼야 함은 기본이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저작음'을 가장 잘 포착할 지점에 마이크가 붙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리수 아래 싯달타와 욕조속 아르키메데스의 깨달음에 버금가는 유레카다. 그날 이후 나는 그동안의 지난했던 먹기활동에서 혁명에 가까운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됐다. 바로 <소리에 집중하기>다. 음식이 입에 들어온 순간 오로지 음식이 부서지고 갈리고 깨지는 소리에만 집중한다. 현상학적으로 말하면 내 의식을 오로지 그 소리에만 '지향'하는 것이다. 잡념과 주변자극을 향한 의식은 통제하고 이로써 철저히 소리로서만 대상을 느낀다.

마침 오늘 식사를 함께한 분들께 나의 체험을 '간증'할 기회가 생겼는데, 한 분께서 무턱대고 따라하셨다가 그만 더부룩한 배를 안고 댁으로 돌아가셨다. 내가 설명을 하나 빠뜨린 게 있는데, 소리에 집중하는 최대 부작용은 양조절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ㅋ



이하 오늘 먹은 음식들. 찹쌀탕수육이 빠졌다.



2017.03.04.(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