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파묘파묘 하고, 와이프도 파묘파묘 하길래 오늘 영화관을 다녀왔다. 근래 이렇게 많은 인파가 팝콘가게 앞에 줄 선 모습이 얼마만인가. 우리는 그 몇 천원 아끼려고 편의점 팝콘을 미리 사왔는데, 참 잘한 일이었다.
파묘를 보긴 할 것 같아서 타인의 감상평은 의도적으로 피해 오늘까지 왔는데, 그간 ‘명작’이라는 둥, 배우들, 특히 김고은의 연기가 놀랍다는 둥,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일단 영화를 보고 나왔으니 내 평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게 왜? 다.
아니 이게 왜 그렇게 난리지?
아니 이게 왜 그렇게 명작이라는 말을 듣지?
아니 이게 대체 왜? …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와 배우들 연기는 좋네. 난 딱 거기까지.ㅎㅎ
내가 너무 기대가 컸나 보다. 맘에 안 드는 구석이 너무 많다.
일단 시작은 꽤 긴장되고 좋았다. 악귀가 씌인 듯한 아기의 등장이랑,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각 전문가 집단까지는. 뭔가 음침한 그 집안 식구들도 그렇고..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관짝을 뚫고 나오자마자 자기 후손들을 잡으러 다니는 조상님이라든지.
관과 시신을 태워버리니 밖에 나다니던 조상님도 단 번에 사라지며 후한 없이 문제가 해결된다든지.
그러다 깜놀한 것은, 아니 갑자기 도깨비의 등장이라니… 일본 출신의 ‘정령’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시도를 한 것은 이해하겠는데, 이건 너무 분명하고 확실한 ‘물리적 실체’로서의 도깨비잖아. 이거 갑자기 왜 좀비영화로 변신하냐고.ㅋㅋ
더 어이 없는 것은, 귀신 이야기로 걍 흘러가면 좋겠는데, 그 이야기의 단초가 왜 하필 일제의 만행이냔 말이야. 그럼 이 영화의 정체성은 귀신이야 역사야, 아니면 외교야 정치야 뭐야? 감독의 과욕을 부린 것 같다. 이 복잡한(나름 복잡한) 스토리라인과 세계관을 정당화하는 데 꼭 굳이 역사적, 정치적 소재를 넣을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귀신, 정령, 신령’이 계급적으로 존재하는 게 실제인 세계관에서 그깟 인간들 간의 유치한(세계관에 비해) 투쟁과 역사가 왜 중요하냐는 거다. 대충 MSG 정도였으면 모를까.
심지어는 영화 말미에 주요인물들이 갑자기 반듯한 역사관까지 드러내며 제대로 헛발질을 하고 만다. 겁없이 죽음을 불사하기까지 하는데, 이거 너무 비장하잖아.ㅋ 물론 그 정도는 충분히 영화적이고 드라마틱한 장면으로서 이해해줄 수도 있긴 하지만, 여기서부터 갑자기 몰입감이 확 떨어지기 시작한 거다.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정합성 있게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도 내 눈엔 좀 엉성해 보였다. 내가 그 분야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의외로 너무 손쉽게(?) 도깨비를 잡아버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시간이 2시간 살짝 넘는데, 한 30분 늘려서 조금 더 복잡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배우들 연기야 손색이 없다. 세간에 김고은 칭찬이 엄청 많은데, 나도 그 얘길 너무 듣고 본지라 부작용도 있었다. 김고은의 연기는 초반에 오히려 임팩트가 강했는데, 나는 후반부에 또 뭐가 있나 하고 괜히 기대를 하고 봤던 거다. 그래서 오히려 용두사미랄까 그런 느낌이 들어서 살짝 아쉽다.
이도현의 캐스팅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도현은 마스크에서 ‘은근한’ 독기? 똘끼?가 보인다. 그래서 더글로리에서도 이점을 잘 뽑아낸 것 같고, 이번 영화에서도 적당한 배역이었다. 그 자리를 대체할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영화는 재밌게 잘 봤다.ㅎㅎ 적당히 지속되는 긴장감도 좋았는데, 내 눈이 너무 높아졌나. 좋은 말이 안 나오네.ㅋ
결론. 듄2 보러 아이맥스 가야겠다. 끝.
2024.03.02.토
'Review > 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편 리뷰] 매드맥스 퓨리오사 사가 (0) | 2024.06.10 |
---|---|
[아트북] 검은 피카소 바스키아 40주년 TASCHEN 아트북 (0) | 2022.04.02 |
[드라마] 본질을 비껴가는 반통찰 즉흥평론: 스토브리그 #4. 노동요? (0) | 2020.02.28 |
[드라마] 본질을 비껴가는 반통찰 즉흥평론: 스토브리그 #3(13,14회). “긍지”와 역할> (0) | 2020.02.12 |
[영화] 본질을 비껴가는 반통찰 즉흥평론: 남산의 부장들(치명적 스포일러 포함) (0) | 2020.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