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몇일 간 나누어 그와의 인연을 적는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4년 10월 27일.
지난밤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뛰어난 음악가가 타계했다는 소식에,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마치 친한 친구를 잃은 것 같은 슬픔에 잠겼다. 오늘은 밤늦게까지 연구실을 지키느라 한 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지만, 도저히 이대로는 잠이 들 수 없어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았다. 사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글을 적어 나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와 맺었던 인연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 그에게 많은 것을 빚진 자로서 갖는 일종의 사명과 같은 것이다.
나는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늘 신해철을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꼽아왔었다. 같은 기간동안 그는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몇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천재의 숭고’와 같은 무엇을 본 것 같다. 그처럼 되고 싶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느끼게 되는 그런 숭고 말이다. 여기에는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에 더해, 약간은 괴팍해보이는(?) 외모와 언술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물론 철학을 전공했다는 독특한 이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혹자는 그의 독설이 개똥철학 같다거나, 음악이 자기취향이 아니라거나 하는 이유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으레 남들처럼 서태지에 열광하고(신해철과 서태지는 자주 비교되곤 한다), 발라드와 댄스곡을 받아들이라며 ‘개종'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온통 사랑 노래가 점령하고 있는 가요계에서, 시적이고 철학적인 노랫말을 담은 Rock음악을 지켜온 그가 나는 자랑스러웠다. 누구나 알다시피 신해철과 그의 밴드 넥스트가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놀라운 작업을 완성해냈다. 나에게 시대를 앞서는 그의 음악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멋지고 거대한 것이었다. 세계적 수준의 프로그레시브락을 시도한 2집은 해외에서도 명반으로 회자될 정도다(신해철은 인터뷰에서 '핑크플로이드'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 것이 끝이 아니었다. 신해철은 계속된 실험과 탈피를 통해 더욱 더 새로운 거인으로 스스로 성장했다.
그래서 나는 그처럼 되고 싶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능력이 그저 좋다고 마냥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가진 의지와 사상과 실천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함께 본다. 그렇게 그 의지와 사상과 실천이 좋아할만 하고, 존경할만 해야 한다. 신해철은 음악가로서 훌륭한 능력 뿐 아니라 음악가가 갖춰야 할 올바른 의지와 사상과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실천을 보여준 사람이었다(음악가는 음악가로서 평가받는 것으로 족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꿈꾸며 여기까지 왔다. 내가 무엇이 되든 나 역시 내 능력과 내 사상과 내 실천이 늘 한결같기를 바랐다. 내 목표는 언제나 신해철이었다.
훌륭한 사람은 단명함으로써 더 빛을 보는 경우도 있다. 오늘 연구실 동료와도 그런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하지만 신해철은 아니다. 그는 젊은 시절 발휘한 천재성만으로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 이후에도 너무 많은 것을 이루어놓고야 말았다. 그의 곡, 그의 목소리, 그의 연주, 그의 동료들이 만들어놓은 것들은 한 데 모여 이미 큰 강물이 되어버렸다. 한번 시작된 강물은 바다를 만나기 전까지는 멈추면 안 되는 것이었다. 계속 흘러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대중들 곁에서 그가 아니면 불가능한 음악을 했어야 했고, 우리는 그가 일구어놓을 거대한 음악의 바다를 함께 가졌어야 했다. 우리도 다른 어느 나라의 사람들처럼 천재로 시작하여 평생토록 그 길을 지켰을 위대한 음악가를 더 오래 가졌어야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계속 이어서 적을 것이다.)
2014.10.28.(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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