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가 어제 돌아가셨다. 모처럼 그를 회상해보았다. 올들어 나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이 참 여럿 가시는구나…)
R.I.P.. Umberto Eco(5 January 1932 – 19 February 2016)
▲ Umberto Eco (image:
10대 때 나는 일요일 정오 즈음이면 엠본부의 <출발! 비디오여행(이하 출비)>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 이렇다할 여가생활이나 놀이문화가 없던 시절, 비디오를 빌려보는 건 가장 일반적인 여가문화였기 때문에 누구나 이 프로그램을 기억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영화전문기자 홍은철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전창걸, 김경식 등이 <영화대영화>와 같은 코너에서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이후엔 김생민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름은 기억 못할지 몰라도 누구나 목소리만 들으면 바로 알아차릴 이철용 성우의 <결정적 장면>도 무척 재미있는 코너였다. 재밌는 건 우리 집에 VTR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프로그램을 좋아했고 꼭 챙겨봤다. 20대 이후엔 그 시간에 집에 있지도 않았거니와 영화전문지(씨네21, 필름2.0 등)를 더 즐겨보았기 때문에 물론 점점 보지 않게 됐다(찾아보니 아직도 하고 있단다. 장수프로그램).
움베르토 에코는 고등학생 때 <출비>에서 처음 알았다. 그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을 영화화 한 장자크아노 감독, 숀코네리 주연의 작품 때문이다. 영화는 이미 86년에 제작되었지만, 아마도 <출비>에선 그날 처음 소개된 듯 하다. 중세시대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뛰어난 두뇌를 가진 윌림엄 수사(숀코네리 역)가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출비>는 매우 호의적인 태도로 영화를 소개한 것으로 기억하지만(원래 영화평은 대체로 좋다), 시종일관 심각한 분위기와 느린 전개로 흥행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도 함께 전했다(내 생각엔 당시 <007>과 <더록>으로 카리스마를 발했던 숀코네리가 극중 윌리엄 수사의 이미지와 서로 잘 어울리지 않았던 것도 원인일지 모르겠다. 그는 오히려 움베르토 에코와 닮았다ㅋ). 당시 방영내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와 <장미의 이름>을 뇌리에 새기기에는 충분했다. 그날 이후 <장미의 이름>는 언젠가 내가 꼭 도전해야 할 과업이 되었다.
▲ original film poster by Drew Struzan (image:https://en.wikipedia.org/wiki/The_Name_of_the_Rose_(film))
드디어 <장미의 이름>을 읽은 건 대학에 들어가서다. 첫 여름방학을 맞아 일단 도서관에서 이것부터 빌려왔다. 특별히 할 것도 없던 며칠을 방바닥에 한쪽 팔을 받치고 옆으로 누워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거의 1000페이지에 달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넘을지도), 이 책을 통해 두꺼운 소설에 자신이 생겨 <전쟁과평화(3권)>, <한강(10권)> 등을 연달아 읽어낼 수 있었다.
<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 중 “비극”을 다룬 1편과 달리 현재 전해지지 않는 2편 “희극”의 존재를 가정하고 펼쳐지는 추리소설이다(심지어 셜록홈즈로부터 비롯된 설정도 일부 눈에 띈다). 한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온 윌리엄 수사의 활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가운데, 중세시대 수도원 특유의 엄숙한 분위기와 수많은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개인과 교회의 욕망, 위선, 권력 등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대작이다. 전반적으로는 추리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지 모르겠으나, 역사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어떤 글을 보니 최초의 “팩션장르”라고 보는 사람도 있더라. 고전의 반열에 오른 현대소설로 평가하는 이도 적지 않다.
움베르토 에코는 본래 기호학자로 출발했지만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지식을 쌓은 바람에, 그를 역사학자, 철학자, 소설가 등 무엇으로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장미의 이름>은 그의 엄청난 지식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으로, 중세라는 시대적 배경의 묘사나, 수도원과 교회 권력에 대한 서술에 있어 특히 탁월함을 보인다. 그 자신이 기호학자답게 이야기 곳곳에 갖은 상징과 묘사를 배치하며 치밀함을 보일 뿐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들도 하나같이 입체적이고 예상을 불허한다. 그래서인지 처음 100페이지 가량을 읽을 때까지는 난해하고 지루하여 힘들기도 하였지만, 전반적인 개요가 잡힌 이후부터는 어느새 쉴새 없이 읽어낼 수 있는 그런 책이다.
▲ First edition (Italian) (image: https://en.wikipedia.org/wiki/The_Name_of_the_Rose)
움베르토 에코와 <장미의 이름>를 알게 된 후, 나는 “학자”와 “작품”의 측면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갖게 되었다. 즉 학자라면 모름지기 에코 정도의 지식을 축적하거나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장미의 이름>과 같이 방대한 지식과 통찰을 담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실현 불가능한” 기준 말이다. 나 자신도 에코와 같은 “학자”로 살고 싶다는 상상을 그때 처음 한 것 같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 분수를 잘 안다. 그래서 단지 노력할 뿐이다. 다음 생에는 가능할까나..(윤회사상을 믿어볼까ㅋ)
나는 사람들을 보면 다양한 “질감”과 “양감”을 떠올리곤 한다. 나의 상상 속에 움베르토 에코는 언제나 “나무 질감”이다. 살아있는 나무 말고, 건물 짓기 위해 반듯하게 잘라놓은 나무 말고,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해 적당히 자르고 갈고 다듬은 가볍고 단단한 나무들.. 손때가 묻어 겉은 부드럽고 쫀득쫀득해 보이는 그런 질감이다. 나는 이런 질감을 순수하게 “학문하는 사람들”이나 “사유하는 사람들”로부터 느낀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종이를 나무로 만들어서 그런가, 학자들이 쓰는 도구들이 유독 나무로 된 것이 많아서 그런가.. 별생각을 다 해봤다. 예전에 윗층에 살던 아줌마가 사주를 좀 볼 줄 아신다 하여 내 사주를 내어드린 적이 있다. 그분에 따르면, 화수목금토 중에 “목”은 학자가 될 사주로 해석한다. 이후 두세차례 가량 사주까페에서 역술인을 통해서도 같은 설명을 들은 바 있다. 그러니 나의 “나무질감” 상상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나도 목5개이긴 하다ㅎ).
나도 “나무질감”의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단초는 움베르토 에코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나에게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해주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 이미 생전에 그의 작품들은 이미 고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의 사후 그 작품들은 정말 고전이 될 것이다. 10여년 만에 <장미의 이름>을 다시 펼쳐야겠다.
2016.02.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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